좁쌀 밥[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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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지만원 작성일20-03-08 08:20 조회6,598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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좁쌀 밥
경기도 영화마을 구둔
여섯 살 때였다
어느 한 겨울날
아침상에는
노란 좁쌀 밥과 짠 김치 물김치
그리고 구수한 숭늉이 올라 있었다
문풍지 사이로 뽀얀 햇살이 들어와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좁쌀 밥 위를
평화롭게 비췄다
형들은 한참 먹을 나이라
마파람에 게눈 감추듯 밥을 해치우고
장난을 치기 시작했다
궁둥이에 손을 대고
입으로 방귀 소리를 낸 후
거무튀튀하고 투박한 손을
내 밥그릇 위에 갖다 덮었다
나는 숟가락을 내팽개쳤다
발버둥 치고
신경질 내며
울기 시작했다
어머니는 형들에게 눈을 흘기며
애 성미를 잘 알면서 그런다며 나를 달랬다
내가 그치지 않자
어머니는
내 밥그릇을 가지고 부엌으로 나갔다가
다시 가져와서는 밥을 바꾸어 왔으니
어서 먹으라고 했다
나는 밥을 검사해보고는
나를 속였다며 신경질을 더 부렸다
어머니는 하는 수 없이
풀기 없이 부서지는 조밥을
커다란 바가지에 넣고
내가 보는 앞에서
물을 부어 씻어주었다
김치쪽을 물에 헹궈서
밥숟갈에 올려주면
몇 술 먹고 말았다
오돌오돌한 조밥이
어린 나에게 맛이 있을 리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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