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기의 계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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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지만원 작성일20-03-08 13:09 조회6,654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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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어느 소대장의 죽음
1968년 베트남의 6월 오후
갑자기 헬기들이 줄지어 날아오더니
내가 속한 중대를 낯선 마을로 태워갔다
미군 전투기들이
마을을 사정없이 폭격하고 있었다
독수리처럼
수직선으로 내려 꽂혔다가
야자수 높이에서 다시 날아올랐다
장갑차에서 내리려는 순간
옆 마을로 진격했던
제2소대 무전병의 울먹이는 소리가
무전기를 통해 울렸다
소대장님이 전사하셨습니다
밤이 되었다
모기떼가 극성이었다
손으로 아무 곳이나 문지르면
수십 마리씩 뭉개졌다
몸도 마음도 다 지쳐있었다
이윽고 철수명령이 떨어졌다
작업복에는 진흙과 모기약이 범벅되어
덕지덕지 말라붙어 있었다
철수용 헬기를 기다리는 동안
병사들은 전우들의 시체를 나란히 눕혀놓고
C-레이션 깡통을 따서 시장기를 메웠다
기지로 돌아와 첫 밤을 맞았다
바로 내 옆에 있었던
소대장 자리가 텅 비어있었다
소대장의 죽음이 실감됐다
그는 몇 달 전
고국으로 포상휴가를 다녀왔다
그때부터 많은 여학생들과
펜팔을 맺고 있었다
식당에서 저녁을 마치고 오면
그는 편지부터 읽었다
월남전의 영웅
미남의 소위를 흠모하는
여고생들의 사연들이었다
그의 침대 머리맡에는
언제나 꽃봉투가 한 뼘씩 쌓여있었다
이리 누워 읽고 저리 누워 읽었다
간간이 문주란의 돌지 않는 풍차를 부르면서
약간 음치이긴 해도
특유의 가락과 감정이 있었다
고개를 약간 뒤로 젖힌 채
눈을 지그시 감고 목을 좌우로 저어가면서
소리를 뽑아내곤 했다
하지만 그런 모습은
더 이상 보이지 않았다
텅 빈 침대 위에는
임자 잃은 꽃봉투만 쌓여갔다
그는 침대 밑에
귀가 쫑긋하게 올라간
귀여운 황색 강아지를 길렀다
주인을 잃은 첫 날부터
그 강아지는 식음을 전폐했다
병사들이 안아주고
밥을 떠 넣어 줘도 먹지 않았다
매일 밤 내는 애조 띤 울음소리가
병사들의 마음을 아프게 했다
어느 날 그 강아지는
천막이 보이는 모래 언덕
뜨겁게 달아오른 모래위에
잠들어 있었다
그 강아지의 죽음과 함께
소대장에 대한 기억도 소멸돼갔다
8. 극기의 계절
캘리포니아 존스타인벡 컨트리에 있는
미 해군대학원에서
나는 36세에
박사과정을 밟기 시작했다
연중 내내 반팔로 지낼 수 있는
지중해성 기후였지만
위장병 때문에
무릎과 발이 시리고 쩌릿했다
뒷골이 무겁고 나른해 잠만 쏟아졌다
교포로부터 몇 차례 침을 맞았다
한 차례에 20달러
가는데 20분 오는데 20분
돈도 시간도 감수할 수 없었다
침술사에게 살려달라 간청을 했다
그가 싸준 침 뭉치를 가지고
나는 거의 매일
내 배와 손발에 침을 꽂았다
배에 꽂는 실침의 수는 30개 내외
고슴도치가 되었다
침을 꽂으면 체력이 소모됐다
몸이 까부라졌다
여기에서 지면 내 인생은 끝이었다
엉금엉금 기다시피 하여 2층 계단을 내려왔다
비틀거려지는 몸을 가누며 뛰기 시작했다
뛰고 나면 생기기 돌았다
비가와도 뛰었고
새벽 두 시에도 뛰었다
하루를 거르면 열흘을 거르게 된다
열흘을 거르지 않기 위해
하루도 거르지 않았다
박사과정이 끝난 시점
내 건강은 일생 중 가장 좋아져 있었다
뛸 때에는 반드시
생각할 거리를 준비했다
수많은 수학이론을 뛰면서 터득했다
내 머리가 수학기호들로 채워졌다
새로운 이론을 공부할 때마다
3~5권의 책을 도서관에서 빌려왔다
같은 이론이라 해도
석학들에 따라
시각이 다르고
표현방식과 기법이 달랐다
감탄이 연속되고
희열이 연달았다
나는 수학책에서 제공하는 공식과 정리를
내 나름대로 소화했고
그 위에 추가하여
내 독자의 방법을 개발했다
공식에 매달린 것이 아니라
공식을 따로 만들어 냈다
박사논문을 쓸 자격을 부여하는 시험이
두 개 있었다
먼저 필기시험을 치고
합격하면 구두시험을 보아야 했다
여섯 명의 박사 후보 중
나 혼자 필기시험에 합격했다
며칠 후
피를 말린다는 구두시험이 열렸다
그 학교의 모든 과정 교수들이
대거 몰려왔다
학생들은 그들을 염라대왕들이라 불렀다
그날 나는 오히려 교수들에게
내가 만든 공식들을 강의하게 됐다
교수들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나처럼 생각해 본 교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면접시험이 끝나자
논문지도교수가
자기 방에 가서 기다리라고 했다
초조하게 가다린지 20분
지만원 박사위원회 여섯 명이
일렬로 서서 들어왔다
기쁨의 웃음을 가득히 물고
내가 마치 높은 사람이나 되는 것처럼
일렬로 서서 한사람씩 악수를 청했다
정말 축하합니다
정말 잘 했습니다
20분 동안 우리 교수들은
당시의 합격여부를 논의한 것이 아닙니다
합격에 이의를 표시한 교수는 없었습니다
아마도 당신은 이 학교 창설 이래
가장 훌륭한 면접시험을 치렀을 것입니다
박사과정 학생을 맡고 있는 교수들이
모두 다
자기들이 양성하는 학생도
당신 같으면 얼마나 좋겠냐
부러워했습니다
모두가 조언했습니다
당신 같이 창의력 있는 학생을
어떻게 인도해야
훌륭한 논문을 쓰게 할 것인지에 대해
1년 동안 논문을 썼다
대한민국 육사출신 현역중령
하버드나 스탠포드 학비의 2.5배나 되는
비싼 학비를 정부가 냈다
극기와 몰입의 경지에서
최선을 다했지만
그래도 실패하면
나는 책임감 때문에
그리고 자존심 때문에
죽어야 했다
1980년 9월 26일
미 해군대학원 석사 박사 수여식장
300여 명의 석사가 탄생했다
하지만 이날 탄생한 유일한 박사는
대한민국 육군 중령 지만원이었다
이날의 미 해군대학원 졸업식 행사는
대한민국 육군 중령 지만원을 위한 것이었다
34. 선 고
내 인생은 선고의 연속
순간순간이 피를 말렸다
북한군 개입을 발설했다고
2003년 1월 광주법원이
선고를 했다
판사 앞에 선 나는
판결의 결과를 기다리는 것이 아니었다
전라도 판사를 경멸할 뿐이었다
2009년 나는
또 5.18로 인해
판사 앞에 또 섰다
그래도 운이 좋아
안양판사 앞에 섰다
두 명의 단독판사가
5.18재판을 회피했다
합의부 재판부가 형성됐다
그 재판장이 나를 대할 때
거머리 보듯 했다
선입관 때문이었다
매몰차게도 그 재판장은
날 향해 재판 도중 언제라도
법정구속이 가능한 존재라고 선포했다
나는 2년 동안
많은 자료를 제출했다
판사가 학습을 했다
송곳 같던 눈초리가
점차 온화해졌다
2011년 1월 19일
나는 선고하는 판사 앞에 섰다
최선을 다한 나는
담담했다
무죄를 선고했는데도
그저 담담했다
모레 나는
또 형사재판 판사 앞에 선다
광주 전체가 총동원된
고소사건에 대해 나는
3년 7개월 동안
열심히 방어했다
이 사건은 좌와 우를 대표하는 결투다
하지만 지난 3년 7개월 동안
나는 우익 대표가 아니었다
그냥 홀로 외롭게 싸웠다
오로지 좁은 공간에서만
사랑하는 이들의 격려를 받았다
결국 판결서를 받는 존재는
오로지 나
나 혼자 감당해야 할
실존적 결산서다
이것이 나의 외로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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