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해보니 나는 슬픈 인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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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지만원 작성일17-11-25 23:10 조회13,164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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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해보니 나는 슬픈 인생
오늘 일본 주간 문예춘추에서 인터뷰 요청이 왔다
미국 등에 위안부 소녀상이 대규모로 확산되고 있는데
이것이 한-일 관계에 어떤 영양을 끼치겠느냐
가족들이 있는 자리에서 의논하니
절대 하지 말란다
지금 언론들은 다 빨갱이 언론들이고
조금이라도 걸리는 것이 있으면
거기에 줄을 대고 온갖 말을 지어내
인격살인을 시키는 마녀들이라는 것이다
이런 가족들에 설명했다
당시 일본군 위안부를 했던 여성들의 국적들은
20개국 정도다
그들 중에서 오늘까지 줄기차게 위안부를 내걸어
일본과 싸움을 지속해 오는 나라는 오로지 한국뿐이다
나는 1995년 중국 조어대(영빈관)에 1주일 머물면서
중국 사회과학 연구소 사람들과 많은 대화를 했다
그들은 말했다
일본에 침략 당한 사실
대량살상 당한 사실
위안부 나라였다는 사실
치가 떨리는 아픔이지만
당시의 국가가 못나서 당했던 일이기에
다른 국가에 살고 있는 젊은 사람들에
숨기고 싶다
중국은 일본을 용서한다
중국도 약소국에게 그렇게 했으니까
하지만 잊지는 말아야 한다
중국이 번성하려면 일본의 힘도 필요하다
그런데 이 한국은 왜 맨날
그 부끄러운 위안부 역사를 국제사회에 선전하는가
국제사회 젊은이들은
한국을 위안부의 나라로 기억할 것 아닌가
현재 미국에 진출해 있는
몸 파는 여성의 숫자는 세계 제일이다
한국이 위안부 문제를
국제사회에 명분으로 내 걸려면
지금의 한국 여성들이 깨끗해야 한다
지금 한국에서 위안부 문제를 끝없이
제기하는 단체는 빨갱이 소굴인 정대협이다
정대협은 빨갱이 소굴이다
대한민국을 파괴하는 단체라는 뜻이다
정대협은 미국과 일본을 증오하고
북한을 빠는 북빠들이다
정대협은 이석기의 통진당처럼 소멸해야 할 대상이다
정대협은 지만원, 이상진, 뉴스타운을 상대로
민사 형사 소송을 했다
그래서 나는 일본에
정대협에 놀아나는 한국 정부
한미일 안보협력 체제를 허물고 있는 한국 정부의 행위들은
국민 대다수의 뜻에 어긋난다는 사실을
일본국민에 전하고 싶었다
한국에도 이런 속 깊은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을
일본매체를 통해 일본국민들에 알리고 싶었다
한일관계 정상화에 일말의 도움이라도 주고 싶어서
그런데 내 가족들은 이러한 계획을 저지시켰다
지금의 언론은 막가파 언론이고
꼬투리 잡았다 하면 마녀사냥 하는
살인 개미떼와 다름없다
어제도 그제도 SBS가 나에 대한 모략 방송을 했고
2006년에는 이순신 플래시게임으로
아빠 죽였고
20016년에는 아빠를 집단 폭행당하는 방송
여러 날 수십 번 내보냈고
그런 불명예 네이버 1위에 떴고
자식들, 식구들, 처제들 사돈들
모두다 이웃에 얼굴 못 들었다 한다
그런데 그 집단 폭력을 기획하고 지휘한 사람이 있다
5.18기념재단 상임이사 김양래다
그는 2016.5.19.서울중앙지법에서
내 머리를 그의 주먹으로 내리쳤다
그는 부인했지만 오마이뉴스 영상에 찍혔다
그는 61세
나는 75세였다
팔팔한 광주인이 76세의 늙은이를
스스로도 때리고
다른 사람들에게 때리라고 지휘한 것이다
내 가족 내 친척이 못 견뎌 한 것이 바로
이것이었다
김양래 집단에 의해
할아버지 나이의 우리아빠가 집단구타당한 사실이었다
인간이 얼마나 못 살았으면
곧 구덩이에 들어 갈 나이에 저렇게 폭행을 당해?
모두가 주위로부터 모멸감을 느꼈다
일본기자 한 테서 또 전화가 왔다
서재에서 통화를 하는데
식구들이 문 열고
뭐라 뭐라 한다
나는 어차피 버려진 인생이지만
식구들의 인생은
아직 남아 있다는 것을 하소연 하는 모양이다
이럴 때 내 마음은 어떤 마음일까
한마디로 내 안의 세상
내 밖의 세상
이리저리 뒤엉킨 복잡하고 더러운 세상
그냥 눈감고 죽고 싶다
죽을 때 사람들은 목욕재계하고
깨끗한 옷으로 갈아입고
유서를 미리미리 남기고
고요히 잠자듯 가야 한다
이런 죽음이라야 주위사람들의 가슴에
잔잔한 파랑을 남기고 간다
그런데 나는 뭔가
14살 더 어린 5.18강패 김양래의 주먹에 얻어 맞고
억센 짐승 같은 광주 여자들에게 욕먹고
암 사자 같은 광주 여자들의 손톱에 긁히고
겉은 여성이지만 속은 맹수 같은 괴물들에
공격당하는 모습
수도 없이 방송에 나가더라
나는 오늘에야
내 가족들의 하소연을 듣고서야 비로소
내 모습 참으로 초라하고 창피했음을
깊이 의식한다
어려서는 부모가 가난해
열세 살에 서울에 와
신문 돌리고 서비스 공장 나가고
건설현장에 나가 고생했지만
그건 오로지 향학열에 불타는 소년이
역경을 극복하는 인간승리의 과정으로 미화될 수 있었다
그 후 나는 일부 성공했다
육사동기생들의 부러움도 받았다
군에서는 대령까지 하면서
군을 좌지우지 흔들기도 했다
내가 가는 곳에는 늘 광풍이 불었다
예편 한 이후
출세의 자리로 초대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1998년 김대중이 장관자리 제안했다
2000년 홍사덕 당시 부총재가
한나라당 전국구 자리 제안했다
그때 나는 부러울 게 없는 자유인이었다
오늘 이런 것들을 잠시 회상한다
외로움과 슬픔의 곡조다
난 오늘 매우 슬프다
계절병이 났다
목이 많이 아프다
채명신 장군 추념식에도 가지 못했다
이제부터는 계절병이 자주 찾아오겠지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
요즘에는 그 노인이 바로 나라는 생각이 든다
세상은 남고 인생들은 지나가야지
나는 이 세상 살면서 몸싸움 한 시기가 거의 없었다
13살 때 지평중학교 1학년 때 내 뒤에 앉아서
늘 주먹자랑 하던 아이가 있었다
그는 내가 모든 선생님들로부터
사랑 받는 것이 몹시 싫었던 것 같다
그는 나와의 결투를 강요했고
그래서 나는 그와 가을 논바닥에서 싸웠다
싸워보기는 그때가 처음이었다
그 이전에의 나는 늘 동네 형들의 귀여운 애기였다
그리고 나이 75세에 나는 광주 김양래로부터
그가 데리고 온 40명의 집단 짐승으로부터 몰매를 맞았다
오죽 하면, 오죽 못 된 짓을 했으면
곧 죽을 나이인 75세에 몰매를 맞아~
일반 사람들은 이렇게 생각했을 것이다
이 엄청난 수모
방송들에 나오고 또 나왔다
이 모습들을 본 내 가족과
내 일가들의 고통을
나는 오늘에야 비로소 전해듣는다
나는 오늘 무한한 수치심을 느낀다
무안한 미안함을 느낀다
이런 수치스런 일들로 인해
나는 국립묘지에 가고 싶지 않다
나는 무공훈장도 받았고
상이유공자증도 받았다
국립묘지 충분히 갈 수 있다
하지만 나는 국군유공자 묘지에
갈 수도 없고 가기를 원하지도 않는다
갈수 없는 이유는 내가
70개가 넘는 전과자이기 때문이다
나는 그냥 이 산천에 내 뿌려지는 것으로 감사한다
여성이 아무런 죄 없이 정조를 강탈당해 자살을 한다
이 억울한 사실은 원시적인 사화통념에 의해
그 가족과 가문의 불명예로 남는다
이런 사회의 통념은 저주를 받아야 한다
이처럼 내가 나보다 14살 어린 광주의 김양래와
그 집단으로부터 봉변을 당했다는 사실
그리고
그 모습들이 여러 날을 통해 TV를 통해 나간 것은
나와 내 가족
그리고 일가친척들에 무한한 수치가 되었을 것이다
김양래를 지휘하는 사람이 있다
광주시장 윤장현이다
이들은 13명의 양아치 급 부나비들과
의사표현 능력 없는 두 노파들을 내세워 나를 감옥에 넣으려 했다
이런 나쁜 사람들을 비호하는 언론들은 많아도
진실을 찾으려 하는 언론들은 단 1개도 없다
참으로 더러운 세상
구더기 세상 그 자체다
내가 사라지는 것은 시간문제다
그 다음 남는 것은 무엇인가
5.18이 성스러운 민주화운동으로 고착되는 것이다
내가 죽으면 5.18은 영원히 민주화운동이 되는 것이다
사람들은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모른다
그걸 모르는 사람들은 김양래로부터 구타를 당하지도 않고
자식들을 광주 것들과 빨갱이 언론들로부터
마녀사냥 당하게 하지도 않는다
결국 외톨이로 남는 건 나 혼자다
외롭고 슬프다
2017.11.25. 지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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