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오는 퇴근길의 따끈한 오뎅탕 > 나의산책

본문 바로가기

System Club 지만원

나의산책 목록

비오는 퇴근길의 따끈한 오뎅탕

페이지 정보

작성자 지만원 작성일17-12-06 22:32 조회11,642회 댓글0건

본문

      비오는 퇴근길의 따끈한 오뎅탕

 

내일 인생의 종말을 고할지라도

오늘 저녁도 식구마다

각기 다른 공간에서 시간을 즐긴다

전쟁 난다며 움츠리고 있는 인생들

그 실루엣들이 여기에 오버랩 된다

겁내는 것은

어떤 경우에도 초라하고 비겁하다

 

사관학교 시절

명화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를 보았다

그것이 스페인 전쟁이었다는 것은 훗날에야 알았다

역사적 배경도 모르고 무슨 명화를 보았다는 것인가

그래도 그 영화는 내게 명화였다

평론가들이 말해서가 아니었다

 

사관학교 3학년 때

그 소설을 영문판으로 읽었다

영어 교수가 생도들에 물었다

영화를 보았나?

책 다 읽었나?

그 영화가 우리에게 가르쳐 준 것이 무엇인가?

잉그리드버그만의 빛나는 눈빛

케리쿠퍼의 멋진 제스처

그건 멋있는 장면이었지 교훈은 아니었다

 

내가 손을 들었다

그 영화는 한 평생의 사랑을

72시간에 농축한 영화입니다

교수는 나를 의심했다

생도는 평론가가 쓴 글을 읽었는가

?

아닙니다

당시에는 물론 지금 이 순간까지도

그 영화를 나처럼 해석한 평론가는 없다

 

전쟁?

아름다운 인간성도

아름다운 사랑도

전쟁에서 가장 화려하게 빛난다

인생은 언제 죽느냐가 문제가 아니라

얼마나 아름답게 죽느냐로 평가된다

많이 올라갔다고 아름다운 게 아니다

많이 벌었다고 아름다운 게 아니다

하직할 때 얼마나 당당하고

얼마나 여유로운 표정으로

하직하느냐에 의해 결산된다

 

이 세상에서 가장 감동적인 교훈은

임종의 순간을 가장 아름답게 보이고 가는 것이다

나도 저렇게 임종해야지

나는 전쟁을 예고하면서도

전쟁을 생각하지 않는다

오늘 밤 전쟁이 와도

나는 창밖의 빗방울을 즐기며

따끈한 오뎅탕을 즐겼다

 

정해진 식당 없이 걷다가 들린 호프집

오뎅탕과 감자 후라이를 시켰다

오뎅탕이 나왔는데 오뎅만두가 얼어붙었다

기분이 좀 상했지만 다시 끓여 달라 했다

여인들이 거기출신들이다

감자 후라이는 색깔이 까맣다

나쁜 기름

나는 손조차 대지 않았다

전라도에 대한 불신이 다시 한 번 확인됐다

 

그래도 그 순간 나는 행복해야만 했다

자기 식구들끼리 피자를 시키고 치킨을 보태

맛있게 먹고 있다

자기들 요리를 자기들이 맛있게 먹고 있었다

좀 누구러진 나는 말했다

치킨이 맛있어 보이는데 왜 피자를 시키세요?

치킨 매일 먹으니까 질력이 나요

남자 1명 여자 3

그들은 내 말을 못 알아들었다

 

좀 있다가 내가 또 말했다

치킨 맛없으시면 이 프라이감자 좀 드릴까요?

네 명 중 주인인 듯한 여성이 의미를 알아챘다

접시에 치킨 덩어리들을 담아왔다

차디 찬 장벽이 한 순간에 무너졌다

 

센스 없으면 그냥 가려 했는데

센스 꽤 있으시네요
호감을 느낀 주인 여성

코카콜라 한 잔씩을 따라주었다

얼굴을 붉히고 나올 수 있었던 순간이

화기애애하게 마무리됐다

또 오세요

연세 있으신데 애교 있으세요

비오는 날 다시 올께요

 

2017.12.6. 지만원

http://www.systemclub.co.kr/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개인정보취급방침 서비스이용약관

지만원의 시스템클럽 | 대표자 : 지만원 | Tel : 02-595-2563 | Fax : 02-595-2594
E-mail : j-m-y8282@hanmail.net / jmw327@gmail.com
Copyright © 지만원의 시스템클럽. All rights reserved.  [ 관리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