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한 피고인’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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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지만원 작성일21-07-28 02:18 조회10,818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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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한 피고인’ [시]
누구나 태어나면
안목이라는 걸 갖는다
안목은 가방끈의 함수라기보다
영혼과 독서와 사색의 함수다
하늘은 누구에게나
남으로부터 인정받고 싶어 하는
욕망을 주셨다
그 중 하나가
우아함과 품위일 것이다
그것이 안목일 것이다
나는 품위가 있고 싶어
거울도 보고
책도 읽었다
품위와 우아함은
오로지 책속에 있었고
사색공간에만 있었다
그리고 그것이
내 10대 20대의
가치관이 되었다
그래서 얼굴에 검은 때 묻히는
자동차 서비스공장에 다니면서도
도시락 들고 버스 타지 않았다
그래서 긴긴 여름
하루 종일 굶었다
이것이 내 10대의 품위였다
내게 관심조차 없던 남들을 의식해
내 건강까지 내던졌던
품위의 소년
그 품위
그 우아함
이제 어디로 갔는가
가버린 게 아니라
안으로 숨었나보다
A Grace Inside
남들이 접근할 수 없는
최고난도의 수학공식과 정리를
창조한 내가
그리고
베트남 참전 용사들의
정신적 영웅이었던 내가
아니
1980년대의 한국군 전체를
쥐락펴락했던
국보급 풍운아로 불렸던 내가
정작 인생을 조용히 정리하는
원로의 나이에 이르러
허구한 날
경찰과 검찰에 불려 다니며
조사받고
나보다 나이 어린
판사 앞에 서왔으니
이 어인 일이란 말인가
선고 날에는
사형수처럼
팔딱거리는 가슴 진정시키며
판사 앞에
서서
저 선고문 중에
어떤 내용 있을까
귀 기울이는 신세가 되었단 말인가
이런 것이
나의 지난 24년을 수놓은
영원한 피고인 지만원의 인생이었다
1998년 김대중 시대가 전개되면서부터
나는 피고인의 삶을 살았다
그는 나를 향해 환한 미소를 지었지만
나는 그 웃는 얼굴에 침을 뱉었다
그 순간의 나는 빨갱이 물어뜯는 사냥개였다
그는 그냥빨갱이가 아니라
김정일의 총독이었다
나는 천성이 탐구하는 사람이고
탐구결과를 세상에 내놓는 것은
내 인생의 보람이었다
그런데 김대중 추종자들은
내가 그를 공격하는 순간에 이르자
나의 탐구를 경계하고 탄압했다
숨기고 싶은 진실이 많아서일 것이다
그 후 나의 운명은 영원한 피고인이 되었다
20세 전후
나는 독서와 사색을 통해
내가 훗날 되고 싶어 하는
인간상을 찾아냈다
영원한 자유인
그런데
1998년부터 24년 동안
나는 영원한 피고인으로 살았다
더블 피고인
트리플 피고인
이 시절 나는
피고인 아닐 때가 없었다
이것이 바로
피고인의 황혼기인 것이다
내가 재판받은 사건은 몇 개나 될까
100건까지는 일일이 세었다
그러다 세는 것도 지쳤다
아마 200건은 넘을 것 같다
답변서 한 개 쓰려면
자료 찾고
논리 세우고
그 논리가 상대방에
잘 전달되도록
쓰고 또 쓴다
내 인생은 답변서 인생이다
내 답변서는 조각품
미술조각가는 끌로 형상을 조각하지만
나는 글자로 무엇인가를 조각한다
미술 조작품은 눈에 보이지만
문자 조각품은
극히 소수의 심미안들에게만
보일 것이다
그리고 나는
귀중한 그 소수를 향해
한밤의 상념을
조각할 수 있는 것이다
2021.7.28. 지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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