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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벨평화상 수상자가 나에 가한 야만(나의 산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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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지만원 작성일18-07-11 16:25 조회10,176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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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벨평화상 수상자가 나에 가한 야만

 

              2002.8.16.자 의견광고문

 

나는 2002816일 동아일보와 문화일보에 대국민 경계령! 좌익세력 최후의 발악이 시작될 모양입니다라는 제목 아래 3,500자 정도의 공익 의견광고를 냈다. 광고문은 이렇게 시작됐다.

김정일 없는 좌익은 뿌리 없는 나무입니다. 그래서 저들은 김정일보다 더 다급하게 김정일을 살리려 합니다. 지난 4월초, 임동원 특보가 전쟁을 막아야 한다며 대통령 전용기를 탔습니다. 김정일과 의 5시간 회담! 김정일이 5시간을 냈다면 예삿일이 아닙니다. 지금 돌아가는 상황이 그때 만든 시나리오일 수 있습니다. 그래서인지 그는 "북을 의심하면 될 일도 안 된다"며 비판의 입을 막았습니다. 이어서 주적개념도 땅에 묻었습니다. 북한이 문제를 일으킬 때마다 북한을 옹호했습니다. 1999년 연평해전에서 승리를 거둔 지휘관을 한직으로 돌렸습니다. 2002년의 6.29 서해 도발 징후에 대한 사전보고를 묵살해 놓고는 적반하장으로 그 보고자를 처벌하려 했습니다. 영해를 북한에 개방하고 일부를 떼어주려 했지만 미국이 막았습니다. 동부와 서부에 남침 철로를 급히 엽니다.”

 

지뢰도 제거했습니다. 북한의 무기증강, 훈련증가, 공격부대의 전방배치 등을 숨겨주면서 우리 훈련은 줄였습니다. 절대로 먼저 쏘지 말라며 군의 손발을 묶었습니다. 갑자기 중령급 이상 20%를 자르려 했습니다. 국내외에 김정일을 통 크고 식견 있는 지도자라고 선전했습니다. 남한이 보증을 설 테니 북한에 국제금융 자본을 빌려주라 했습니다. 북한을 '테러지원국'명단에서 빼 달라 로비를 했습니다. '악의축' 발언으로 미국과 북한관계가 악화될 때 분명하게 북한 편에 섰습니다.”

 

정권말기에 들면서 더 정신없이 퍼줍니다. 북한에 퍼준 것들이 5조 원어치입니다. 러시아로부터 받을 148천만 달러를 북한에 주라 했습니다. 우리 몰래 간 돈이 수십억 달러라 말들 합니다. 그중 4억 달러를 미국이 폭로했습니다. 관광객이 없어도 1년에 3700만 달러를 자동으로 줍니다. 금강산 화장실 한번 가는 데 4달러를 냅니다. 여인들은 흔들리는 밧줄 다리에서 공포에 떨며 울었습니다. 잡혀가 문초를 받은 관광객 수가 많습니다. 그래도 언론을 차단하고 마구 보냅니다. 북한이 사과하지 않는데도 또 30만 톤의 쌀을 퍼줍니다. 전기와 가스와 광케이블 공사를 시작하고 미국이 말리는 무선전화 시스템을 굳이 가설해 줍니다. 2,000억원 규모가 갈 모양입니다. 그런데 우리의 수해자금은 없다 합니다. ”

 

약점이 단단히 잡힌 모양입니다. 지금 이 나라는 사실상 김정일이 통치하고 있는 게 아닌가요? 1999년 후반, 김정일이 대통령을 협박했습니다. "김대중은 수령님으로부터 사랑과 배려와 도움을 받고서도 배은망덕한 행동을 한다"(문예춘추12월호). 북한 부주석 김병식이 1971년도에 20만 달러를 주었다는 편지가 공개됐습니다(인터넷). "내 입만 열면!(?)". 20003월 대통령이 다급하게 베를린으로 날아가 메시지를 보냈습니다. ‘민간조직을 통한 지원에는 한계가 있으니 통크게 지원하려면 정상회담을 거쳐 정부가 나서야 하겠습니다’. 그해 6, 두 정상은 대열을 이탈해 총 90분간 차중 접선(?)을 했습니다. 그 후부터 퍼주기, 감싸기, 지뢰제거, 남침통로 열기, 반공전선 허물기, 좌익세력의 총동원, 국가 정통성 뒤집기, 법정의 판결 뒤집기, 적화교육, 좌익들의 사회장악, 인물감시, 언론탄압, 주한미군철수 등 그야말로 대대적인 좌익화 작전이 동시다발로 시작됐습니다. 이를 주도하는 이들은 확실한 좌익입니다. . . . 광주사태는 소수의 좌익과 북한에서 파견한 특수부대원들이 순수한 군중들을 선동하여 일으킨 폭동이었습니다.소요사태를 일으켜놓고 계엄령을 선포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되면 선거도 없고, 우익들이 잡혀가고, 김정일이 무혈로 서울을 장악하는 사태가 올 수 있습니다.”

 

김대중이 분노한 대목은 김대중을 김정일에 충성하는 김정일의 앞잡이라 표현한 많은 분량의 문장들이었다. 김대중을 지지하는 정당과 MBC방송, 오마이뉴스가 동시에 나서서 어떻게 일국의 대통령을 빨갱이라 공격할 수 있느냐며 집중적으로 성토했고, 민주당은 성명서까지 냈다. 그래도 팩트들을 나열한 그 문장들을 가지고는 나를 법적으로 걸어 넣을 수 없었다. 이들이 나를 걸어 넣기 위해 찾아낸 샅바는 광고문 속에 있는 35자의 문장 하나였다. “광주사태는 소수의 좌익과 북한에서 파견한 특수부대원들이 순수한 군중들을 선동하여 일으킨 폭동이었습니다.이 문장 하나가 광주 5.18단체들의 명예를 훼손했다는 이유로 서울 교외에 사는 나를 먼 광주로 끌고 간 것이다.

  

       의견광고문 중 35자 트집 잡아 폭력 린치 감금

 

2002820, 광주에서 ‘5.18부상자회장 김후식이 검은 유니폼을 입은 12명의 어깨들을 인솔하고 광주로부터 올라와 사무실을 부수고 아파트 대문과 차량을 부수고 이웃사람들을 공포에 떨게 했다. 이들은 사무실 집기들을 부수면서 김대중 사진를 발견하고는 우리 큰형님이 왜 이 개자식 설합에 있어이렇게 말했다 한다. 이들 5.18깡패들의 폭력에 대해 경찰들은 겨우 나에게 피신하라 사전에 알려준 것뿐이었다. 당시는 김대중이 신이었고, 5.18은 가장 위력 있는 세도였다. 지금까지도 5.18이라는 명칭만 내 세우면 역대의 대통령들도 법관들도 정치인들도 숨을 죽여왔다. 은행에 가서 5.18의 이름으로 취직을 호령하면 은행은 그 요구를 받아주어야 했다. 지금의 한국에는 분명 독재자가 있고, 그 독재자는 5.18이다.

 

이어서 광주의 45.18단체들이 고소를 했다. “5.18은 성스러운 민주화운동이었는데 어째서 불순분자와 북한특수군이 개입했다는 것이냐, 용서할 수 없는 명예훼손이다“. 한국 근대사 최대의 역사사건에 대해 광주사람들과 다른 역사적 시각을 공개적으로 표현한 것이 5.18단체들의 명예를 훼손했다는 것이다.

 

20021022일 오후 4시경, 광주검사 최성필이 보낸 4명의 경찰관이 아파트 안으로 들이 닥쳤다. 한국의 가옥들은 구두를 현관에 벗어놓고 맨발로 생활하도록 지어져 있다. 바닥의 먼지를 닦기 위해 늘 주부들이 걸레질을 한다. 그런 정결한 방에 남쪽 지방 광주로부터 온 체포조 4명이 구두를 신고 더러운 발자국을 내면서 들어왔다. 컴퓨터 앞에 앉아있는 나의 두 팔을 등 뒤로 돌려 수갑을 채웠다. 법관이 발행했을 체포영장도 보여주지 않았다. 아내와 10세 전후의 남매 아이들이 실어증에 걸린 사람들처럼 멍하니 지켜만 보고 있었다. 그들이 입은 깊은 상처는 엄청난 트라우마가 되었다.

 

일반 사람들은 수갑을 뒤로 채우면 단 10분을 견디지 못해 할 것이다. 이들은 연행과정 6시간, 검찰청 조사과정 2시간 동안 수갑을 뒤로 채인 채 아들 벌되는 경찰과 조사관들로부터 한순간도 쉬지 않고 날아드는 손 지검과 지독한 욕설을 고스란히 당해야 했다. 8시간 동안 수갑을 뒤로 찼다는 그 자체로 나는 이미 인간으로서 감내할 수 없는 가혹한 린치를 당한 것이다. 광주가 민주화의 성지라면서 그 광주인들이 내게 가한 야만은 민주화라는 딱지(Label)가 폭력으로 탈취한 대국민 사기극이었다는 것을 생생하게 증명하고도 남음이 있을 것이다.

 

나는 소위로부터 대위까지 베트남전에 전투요원으로 참전했다. 그 때에도 이런 질 낮은 지옥은 없었다. 이 때 내 나이는 60, 체포조의 나이는 30대 초반으로 보였다. 자기보다 나이든 사람을 깍듯이 존중한다는 한국의 유교풍습은 오간 데 없었다.

 

      민주화의 성지, 광주는 야만의 소굴이었다

 

니미씨발 좆같은 새끼야, 니놈이 어디라고 감히 5.18을 씨부려, 우익새끼들은 모조리 죽여버려야 한당께, 야 이 개새끼야, 네깟 놈이 무얼 안다고 감히 5.18을 건드려, 뭐 이런 싸가지 없는 개새끼가 있어, , 이 새끼야, 너 이회창으로부터 얼마나 받아 챙겼냐, 이런 새끼가 무슨 대령 출신이야, 이런 새끼가 무슨 육사 출신이야, 대령질 하면서 돈은 얼마나 챙겼냐, 부하 꽤나 잡아 쳐먹었을 꺼다

 

내 거주지인 안양에서 광주검찰청까지 가는 동안 체포조 요원들은 누군가로부터 전화들을 받았다. 전화를 받을 때 마다 이들은 , 누구입니다하며 자기 이름을 댔다. 나는 이들의 이름만은 반드시 기억해 훗날 역사에 고발하고 사회에 고발하기로 독하게 마음먹고 매를 맞고 욕을 먹으면서도 한번 들은 그들의 이름을 가슴에 쓰고 또 썼다. 415호 검사실 김용철, 광주서부경찰 이일남, 박찬수, 이규행. 이들은 내가 화장실을 가겠다 해도 이 좇 같은 새끼야, 바지에 싸부러” “이 새끼 가다가 시궁창에 쑤셔 너 부러쥐어박고 욕설을 퍼부었다.

 

나는 소위로부터 대위까지 베트남전에 전투요원으로 참전했다. 그 때에도 이런 지옥은 없었다. 25세의 신삥소위로 베트남 정글전을 처음 시작하던 날, 바로 앞 선발대가 콩을 볶으면서 적과 교전하던 순간, 나는 바위틈에 엎드려 이 순간을 다시 무를 수만 있다면생각한 적이 있었다. 세상 끝 절벽 위에 서 있다는 공포감 앞에서 순간적으로 스쳐간 생각이었다.

 

415호 검사실로 끌려가니 나를 체포해오라 명령한 최성필 검사가 잡아먹을 듯 노려보면서 소리를 질렀다. “이 개새끼 풀어주지 말고 조사해조사를 하는 또 다른 2시간 동안 뒤로 채운 수갑은 풀어주지 않았다. 화장실을 호소했다. 수갑을 풀어주었지만 두 팔은 등 뒤에서 내려올 줄 몰랐다. 팔을 움직일 수 없었다. 조사관은 화장실에까지 와서 빨리 싸부러 이 개새끼야용변을 끝내자 수갑을 다시 등 뒤로 채웠다. 조사를 하면서도 자기가 바라는 말을 하지 않으면 눈알을 부라리고 씨발놈아” “ 개새끼야욕을 하고 때릴 듯 위협했다. 최성필 검사의 이웃 검사로 보이는 여성이 짧은 치마를 입고 살랑대며 걸어왔다.

 

     광주에는 아름다움이 없다

 

당신이 시스템공학 박사요 엥, 시스템공학이란 게 있당가, 어디서 학위를 받았소?, 처음 듣는 건디 이거 가짜 아냐? 좀 알아봐야 겠구만, 어이 좀 알아보소, 당신 눈에는 광주시민 전체가 빨갱이로 보이요? 광주가 아니었다면 한국에 무신 민주주의가 생겼겠소. 어림도 없재이 참말로 잉~”

 

20021024, 광주지방법원에서 영장실질심의를 맡은 부장 판사 정경현은 나의 변론을 맡은 광주출신 이근우 변호인에게 변호인은 광주 시민들에게 무슨 욕을 들으려고 서울 사람의 재판을 맡았소라며 신성해야 할 법정에서 불호령을 쳤다. 변호인이 피고인의 경력과 훈장 받은 사실들을 나열하자 시끄럽소, 지저분한 심문은 집어치우시오라고 면박을 주었다. 변호인은 66, 그를 법정에서 모욕한 전경현 부장판사는 전남 함평에서 1957125일에 태어난 사람이다.

 

정경현 재판장은 나를 노려보면서 당신이 광주에 대해 무얼 아요? 나는 내 눈으로 똑똑히 보았소. 구속영장은 발부됩니다. 이상이오”. 필자는 할 말이 있으니 발언권을 달라고 요구했다. 그는 매우 못마땅해 하면서 구속영장은 발부되니 말해보시오라고 말했다. 필자는 필자가 구속사유를 저지르지 않았으며 구속 요건에 해당하지도 않는다는 사실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는 들으려 하지도 않고 불과 두 마디 정도 듣고서는 시끄럽소라고 노려보았다.

 

1030, 구속적부심 재판이 열렸다. ‘김용출부장판사(1959.02.08 전남 장성출신)가 시니컬하게 웃으면서 나의 형님도 아무런 죄 없이 계엄군에 가서 몇 시간 동안 고초를 받고 왔소. 이런 건 어떻게 해석해야 되요?”. 재판장인 나도 피고인인 당신에게 감정이 있다는 표현이었다. 바로 이들이 민주화의 성지라고 하는 광주의 판부장판사들이었다. 하는 행동들을 보면 감정의 집단이요 폭력의 집단인데, 그들은 대한민국 국민에게 광주를 민주화의 성지라고 불러라 억압하는 것이다.

 

      대법원 판사들도 광주지방법원의 하수인들

 

형사소송법 제15조는 지역정서가 작용하는 본 사건을 광주지법 이외의 다른 지역 법원으로 이송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나의 서울지역 변호인들은 이 지역정서와 토지관할 권을 이유로 관할이전 신청을 3회씩이나 냈지만 광주지법은 이러한 법의 정신과 실정법을 무시했다. 대법원에 상고를 했지만 대법원은 광주에서 재판받는 것이 적법하다고 판결했다. 이런 판결을 내린 대법관은 강신욱(재판장) 조무제(주심) 유지담, 손지열이었다.

 

1심 재판장 전성수는 나에게 징역10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고, 2심 고등법원 판사 박삼봉은 내 항소를 기각했다. 나는 당시 한국에서 가장 오래 된 시설이라는 광주교도소에서 101일 동안 나를 적으로 여기는 광주-전라도 수용자 12명과 한 방에서 지내면서 또 다른 고통들을 당했다. 낮이면 신문을 조각 내 돌돌 말아가지고 바닥의 나무 틈새들을 메워야 바닥으로부터 오는 찬바람을 어느 정도 약화시킬 수 있었다.

 

       광주 교도소에 차압당한 환갑

 

그리고 그 안에서 환갑을 맞았다. 환갑날, 가족이 면회를 왔다. 검은 새벽, 하얗게 내린 눈밭에 깊은 발자국을 내며 드물게 지나다니는 택시를 잡아 타고 전철을 타고 김포까지 와 비행기를 타고 광주에 오는 고통은 이만 저만이 아니었다. 그렇게 와서는 10분 동안만 얼굴을 보고 갔다. 안타까운 심정으로 헤어진 후 수용실로 돌아오는 복도 길 한 가운데서 나는 그만 주저앉고 말았다. 주체할 수 없이 쏟아지는 눈물과 한없이 경련하는 어깨를 감당할 수 없어 펑펑 눈물을 쏟았다. 아마도 괴한들에 의해 머나 먼 무인도로 납치당해 온 가녀린 규수 정도가 느낄 수 있는 공포감과 적막감과 서글픔이 이러하지 않을까, 나는 당시의 심정을 이렇게 기록해 놓았다.

 

지금과 같은 인권이 보편화된 세상에서 어떻게 감히 경제 10대 국인 대한민국에서 이런 비문명적 현상이 있을 수 있느냐, 선진국들에 사는 세계인들은 내 이 말을 믿으려 하지 않을 것이다. 이런 폭력사건이 2002년 노벨평화상을 받아 손에 쥐고 있던 김대중이 대통령직에 있을 때 발생했다고 하면 나의 이 말을 더욱 더 믿으려 하지 않을 것이다.

 

 

 

2018.7.11. 지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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