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8에 대한 나의 연구(나의 산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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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지만원 작성일18-07-13 18:22 조회9,074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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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에 대한 나의 연구
(나의 산책)
연구의 결론
5.18은 김일성과 김대중이 야합한 북한의 게릴라 침략이었다. 북한의 인민군 원수로 2015년에 사망한 리을설이 60세의 3성장군으로 내려와 용병급 능력으로 훈련된 북한특수군 600명을 지휘했다. 이들 600명은 학생으로 위장하여 공수부대 주둔지를 찾아가 싸움을 걸어 공수부대로 하여금 광주시민을 상대로 진압봉을 휘두르게 만들었다.
이 600명은 군부대의 극비사항인 부대이동정보를 획득하여 톨게이트에 매복해 있다가 5월 21일 08시 정각에 20사단 지휘부 차량부대를 습격하여 사단장용 지프차를 포함해 14대의 지프차를 탈취해 군용차량 공급 업체인 아시아자동차 공장으로 몰고 가 경비병들을 위압하여 4대의 장갑차와 374대의 군용트럭에 키를 꼽게 한 후, 이들을 몰고 전남지역 17개 시군에 숨어 있는 44개 무기고를 향해 곧장 질주했다. 광활한 전라남도 땅에 골고루 산포돼 있는 44개 무기고를 불과 4시간 만에 2개 연대를 무장시킬 수 있는 5,403정의 총기를 탈취했다는 것은 사전 예행연습이 없고서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무기고를 향해 달릴 때는 곧장 덜리더니 무기를 털어 광주로 올 때는 여러 차례 길을 물었다. 8톤 트럭 분량의 TNT를 털어 전남도청에 2,100발의 폭탄을 조립해 놓았다. 그런데 이 폭탄을 해체할 수 있는 기술자는 전라남북도를 관활하는 계엄부대 전체에 단 1명 밖에 없었다. 사상범 170여명을 포함해 2,700명의 수용자들을 해방시킬 목적으로 광주교도소를 6차례 공격했다. 광주의 개념 없는 양아치 계급들을 몰고 다니면서 광주와 전남지역 전반에 걸쳐 동시다발적인 게릴라전을 벌였다.
이 600이라는 숫자는 검찰의 수사결과보고서에도 있고, 상황일지에는 비일비재하고, 1985년 발행된 안기부 보고서에도 있고, 북한 책 여러 곳에 있고, 심지어는 5.18기념재단 공식 홈페이지 역사기록에도 쓰였고, 돌로 만들어진 광주의 사적물에도 깊이 새겨져 있다.
살인기계로 훈련된 북한특수군 600명은 계엄군과 싸우기 위해 온 것이 아니라, 계엄군이 없는 곳들에서 광주시민들을 잔인하게 살해해놓고, 이를 공수부대의 만행인 것으로 뒤집어씌움으로써 전라도 지역과 국가 사이에 남남 전쟁을 유발시켜 전남지역을 치열한 내전상태로 몰아넣고, 이 내전의 불길을 전국적으로 확대한 후, 국제사회를 향하여는 대한민국은 자국민을 학살하는 인류공동의 적이라는 내용으로 모략 선전하여, 남침의 명분으로 연결시키기 위한 상황적 토대를 마련하기 위해 온 것이다.
특수군 600명이 이룩한 상황적 토대를 최대한 이용하고 이를 증폭시키기 위해서는 대규모 정치 공작조가 필요했다. 이를 위해 당시 현역 대남공작부장 김중린(58세)이 이끄는 또 다른 600여명의 정치공작조가 내려왔다. 남녀 노인들, 10세 전후의 꼬마들, 영화배우, 조각가, 소설가, 음악가 등 각계의 성분 좋은 사람들이 내려왔고, 김일성의 4촌 여동생인 김정숙, 김정일의 여동생인 김경희와 장성택 그리고 그 세 살 난 장금송 등 8명의 로열패밀리까지 왔다.
이들 남녀노소 민간인들은 시체 장사에 동원됐다. 시체가 든 관들을 도청 앞에 내다놓고 마치 그들이 광주시민들인 것처럼 무대를 만들어 사진들을 찍고, 이 사진들을 독일 기자 힌츠페터를 통해 세계에 내보냈다. 이로 인해 전두환은 국제사회에서도 살인마 또는 독재자로 몰렸다. 이들은 또 남남전쟁을 부추기기 위해 전라도 각지에 다니면서 유언비어를 확산시켜 국가는 타도해야 할 대상인 것으로 모략했다. 1979년 10월 26일, 박정희 대통령 서거 직후부터 북한은 10명, 20명, 30명씩의 소단위 침투조를 잠수함과 태백산맥 루트 등을 통해 광주 전남 지역에 보내, 게릴라 시가전 작전을 준비케 하는 한편 대형 선박이 드나들 수 있는 교두보를 설치한 후 노인들과 어린 아이들까지 데려왔다. 이 부분에서 좌익들은 “어린 아이가 무슨 특수군이냐, 여성들이 무슨 특수군이냐” 이런 말들로 진실을 호도하려 든다. 하지만 공산당은 늘 정규전과 비정규전을 배합하여 전쟁을 한다. 어린이들과 부녀자들은 언제나 공산 게릴라전의 필수품이었다.
연구 방법 및 과정
위 결론을 내릴 수 있는 데까지에는 문헌연구와 영상분석 두 가지가 있었다. 문헌연구는 2003년부터 2014년까지 12년 동안 이루어 졌고, 영상분석은 2015년 5월 5일부터 지금까지 3년 이상에 걸쳐 이루어지고 있다. 문헌연구는 내가 주도했고, 영상연구는 노숙자담요라는 필명을 가진 영상전문가가 이끄는 영상분석팀이 주도했다. 이 팀은 미국 정보기관들에서 영상분석 업무를 수행했던 사람들로 신변보호 상 신분을 공개할 수 없는 사람들이다. 확실한 것은 이들의 영상분석 기술을 한국사회에서는 따라 갈 사람이 없다는 사실 그리고 사진 한 장을 분석해 주는데 200만원을 달라고 하는 것이 실력조차 없는 한국의 영상분석 자들인데 반해 노숙자담요는 수 천 개의 사진들을 오로지 애국심에[서 시신경을 파괴당해 가면서 스스로 일감을 찾아 분석해 내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 세상 에 이 험악한 고생을 3년 이상이나 스스로 감당할 사람들이 이 팀 말고 또 어디에 있을까. 나는 세계인들을 향해 물어보고 싶다. 그런데도 이런 성스러운 작업, 고행의 작업을 가볍게 여겨 함부로 폄훼하는 사람들이 소위 애국자를 자칭하는 사람들 중에 꽤 많이 있다.
<문헌 연구>
내가 활용한 문헌들은 1980년에 작성된 검찰기록, 1, 2, 3심 법원 판결, 1980년 및 1995년의 검찰기록, 공판조서 등 A4지 18만 페이지 정도가 그 주류를 이루고 있다. 여기에 더해 통일부 자료, 북한의 대남공작 자료, 광주 5.18기념재단 등이 발간한 5.18유공자들의 증언집 등이 있다.
2008.10.에 발간한 “수사기록으로 본 12.12와 5.18”은 모두 1,720 페이지이며 4권으로 구성돼 있다. 이 책은 18만 쪽에 이른다는 수사 및 공판 기록들 그리고 수사기관들이 수집한 모든 증거자료들을 소화하고, 그 소화한 것들을 내 방식으로 정리한 것으로, 이 책을 완성하는데 무려 6년이 걸렸다. 독자들 중에는 4권이 너무 분량이 많으니 2권으로 축약해 달라 주문하는 사람들이 꽤 있었다. 그래서 2009년에 상, 하권으로 구성된 압축본이 나온 것이다.
전라도 사람들은 물론 각계의 유수한 사람들이 읽었다는 책이 있다. 황석영 이름으로 발간된 ‘넘어 넘어’라는 책이다. 원래의 제목은 “죽음을 넘어 시대의 어둠을 넘어”인데 제목이 너무 길어 짧게 부르는 책명이다. 그런데 지금까지도 많은 사람들은 이 책을 5.18의 바이블이라 믿고 있다. 그런데 내가 이 책을 읽어보니 팩트가 전혀 없는 악의적 모략 물이었다.
나는 재판 과정에서 재판장의 도움을 받아 통일부가 소관하고 있는 비밀자료들을 복사할 수 있었다. 북한의 ‘조국통일사’가 1982년에 631쪽 분량으로 발행한 “주체에 따라 나아가는 남조선인민들의 투쟁”과 조선노동당 출판사가 1985년에 발행한 119쪽 분량의 ‘광주의 분노“ 등 여러 권의 대남공작서들이었다. 북한책들을 분석한 결과 나는 세 가지 결론을 얻을 수 있었다. 북한이 특히 5.18에 대해 묘사한 표현들은 북한의 대남역사 전문가들이 각 현장에서 직접 보고 느끼기 전에는 쓸 수 없을 만큼 구체적이라는 결론, 서울 및 광주에서 벌어진 격렬한 학생시위를 경찰이 감당할 수 없는 데에는 그들의 독특한 전략 전술이 있었기 때문이었다는 결론 그리고 마지막으로 황석영 이름으로 발행된 ’넘어 넘어‘는 앞의 북한 책 2개를 짜깁기 한 것이라는 결론이다. 이 두 개의 북한 책에 쓰인 전략 전술은 너무 중요하고 생생한 것들이어서 나는 여러 차례에 걸쳐 경찰이 학습하기를 바라며 인터넷에 공개한 바 있다. 결국 5.18의 바이블로 인식돼온 ’넘어 넘어‘는 북한이 써준 책이었던 셈이다.
이와 유사한 현상이 더 있다. 1987년 광주의 적색 신부들은 ‘천주교광주대교구정의평화위원회’명의로 ‘오월 그날이 다시 오면’이라는 컬러 화보집을 냈다. 거기에는 매우 비참하게 으깨진 얼굴들 15개가 가마니 또는 멍석 위에 정물처럼 올려 진 상태에서 찍힌 사진들이 나열돼 있고, 공수부대가 저지른 만행이라는 설명들이 들어 있다. 그런데 1982년에 북한이 남한에 뿌린 삐라에 그 중 5개의 사진이 인쇄돼 있다. 광주신부들이 공수부대를 모략하기 위해 북한과 결탁하여 모략용 사진을 공유한 것이다.
그리고 2014년 10월 나는 최종적으로 광주에 소재한 5.18기념재단이 소유한 ‘5.18유공자들의 증언집’들을 분석하였다. 김대중 시대에 자기들 세상이 왔다고 거침없이 사실들을 실토한 5.18 최고급의 유공자들 증언들을 요약해 보면, 무기를 턴 것은 광주시민들이 아니었고, 계엄군을 몰아 낸 5월 21일 밤부터 5월 24일까지 전남도청은 엄격해 보이는 외지인들이 점령해 있었고, 5.18 최고급 유공자들은 외지인들이 비워준 도청에 5월 24일 밤부터 비로소 한 두 사람씩 들어가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여기까지를 포함해 나는 2014년 10월, “5.18분석 최종보고서”를 썼다. 여기까지에서 내린 결론은 간단했다. 1) 북한특수군 600명이 광주폭동을 주도했다 2) 광주에 광주인들이 구성한 시위대는 없었다. 3) 광주의 무개념 양아치 계급들은 북한특수군 600명에 부역한 부나비들이었다. 4) 대한민국 국민 중에 광주시위를 지휘한 사람은 없다.
<영상 연구>
2015년 5월 3일, 일베의 어느 청년이 인터넷에서 유명했던 현장 사진 속 광수폭동의 대표적인 주역 얼굴이 연합뉴스가 보도한 2010년 평양 노동자회관에서 거행된 5.18 제 30주년 기념행사장 로열석에 앉아있는 사람의 얼굴과 똑같이 생겼다는 글을 올렸다. 나는 시스템클럽 홈페이지에 ‘영상분석 전문가를 찾는댜’고 도움을 청했다. 이에 노숙자담요가 즉시 나타나 5월 5일, 제1광수에 대한 얼굴을 과학적으로 분석해 올렸다. 그는 얼굴의 각 부위를 화살표와 함께 비교하는 설명을 했고, 특히 얼굴 부위의 특징에 대한 분석을 자세히 해주었다. 이 분석내용을 접한 수많은 네티즌들이 감탄을 했고, 흥분한 네티즌들이 광주 현장 사진들을 찾아내서 “이 얼굴이 북한 인물 사전의 누구와 닮았다”며 노숙자담요에게 분석을 의뢰하기 시작했다.
이런 토스와 분석에 의해 광주에서 찍힌 현장 얼굴들이 북한의 아무개와 같은 얼굴이라는 분석결과들이 속속 나오기 시작했다. 나오는 순서대로 제1광수 제2광수로 명명되었고, 지금 이 글을 쓰는 2018년 7월 13일 현재까지 무려 567명의 광수가 나왔다. 숫자적으로 보면 네티즌 정보 매니아들이 발굴해낸 광수는 전체 숫자의 10% 정도를 좀 넘을 것이다. 하지만 광수 찾기 분위기를 만들어 낸 이들의 기여는 대단한 것이었다. 광수라는 이름은 광주에 다녀간 북한사람을 의미한다. 5.18당시 북한이 모든 TV프로를 생략하고 24시간 광주사태를 실황중계 했는데, 군 내무반에서 이를 시청하던 병사들이 “야, 저기 광수가 달린다, 광수, 저것 좀 봐”하며 박수를 치면서도 부러워했다는 이야기가 탈북자들이 2009년에 발행한 수기집 “화려한 사기극의 실체 5.18”에 소개되면서부터 광수는 ‘5.18-네티즌’들의 유행어가 돼 있었다.
광주 현장 사진 한 장에 있는 29개의 얼굴이 최근 김정은과 함께 찍은 인민군 장군단에 다 들어 있기도 했다. 인민군 원수가 1명, 차수가 12명, 대장이 47명, 역대 내각총리 5명, 최룡해, 김영철, 황병서 등 등 우리에게 잘 알려진 북한의 고위급 치고 광주에 오지 않은 사람이 없다. 광주는 북한사람들의 가장 큰 출세코스였다. 황장엽과 김덕홍도 광수, 강명도 조명철을 위시한 탈북자 60명도 광수로 판독됐다.
내가 문헌들만을 가지고 연구했을 때는 단지 북한특수군이 600명 왔다는 사실까지만 확인했다. 그런데 노숙자담요의 영상분석 결과 우리는 김일성이 특수군 600명만 보낸 것이 아니라 또 다른 별도의 600명 정도의 정치공작조를 내려 보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어떤 사람들이 와서 무슨 작전을 벌이고 갔다는 것을 현장사진들에서 찾아낼 수 있었다. 20사단 지프차를 몰고 가는 사진, 장갑차를 유도하는 사진, TNT를 조립하는 사진, 도청을 배타적으로 점령하고 있는 사진, 시체장사를 하는 사진 등으로부터 그들이 무슨 작전을 했는지 충분히 해석할 수 있었다. 수백에 이르는 현장사진들은 주로 노숙자담요에 의해 발굴되었고, 그 사진들은 우리에게 두 가지 의미를 선사했다. 하나는 사진으로부터 당시의 작전 상황을 읽을 수 있게 했고, 다른 하나는 현장 사진 속 얼굴이 북한의 누구라는 사실을 분석할 수 있게 해주었다. 이는 5.18연구를 완전에 가깝도록 할 수 있게 한 하늘의 뜻인 것으로 해석된다.
2018.7.13. 지만원
http://www.systemclu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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