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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소대장의 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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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지만원 작성일20-03-08 11:59 조회6,907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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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소대장의 죽음  

 

1968년 베트남의 6월 오후

갑자기 헬기들이 줄지어 날아오더니

내가 속한 중대를 낯선 마을로 데려갔다

마을을 사정없이 폭격하는 전투기들이 보였다

미군 전투기가 독수리처럼

수직선으로 내려 꽂혔다가

야자수 높이에서 다시 날아올랐다

검은 옷을 입은 사람들이 날아다니듯

마을과 마을 사이를 뛰어 다녔다

 

장갑차에서 막 내리려는 순간

옆 마을로 진격했던

2소대 무전병의 울먹이는 소리가

무전기 수화기를 통해 울려 퍼졌다

소대장님이 전사하셨습니다

 

밤이 되었다

모기떼가 극성이었다

손으로 아무 곳이나 문지르면

수십 마리씩 뭉개졌다

몸도 마음도 다 지쳐있었다

이윽고 철수명령이 떨어졌다

 

작업복에는 진흙과 모기약이 범벅되어

덕지덕지 말라붙어 있었다

철수용 헬기를 기다리는 동안

병사들은 전우들의 시체를 나란히 눕혀놓고

C-레이션 깡통을 따서 시장기를 메웠다

 

기지로 돌아와 첫 밤을 맞았다

바로 내 옆에 있었던

소대장 자리가 텅 비어있었다

그제야 소대장의 죽음이 실감됐다

 

그는 몇 달 전

고국으로 포상휴가를 다녀왔다

그때부터 많은 여학생들과

펜팔을 맺고 있었다

 

월남의 여름 해는 참 길었다

저녁 식사를 끝냈는데도

해는 중천에 떠있었다

식당에서 오자마자

그는 편지부터 읽었다

읽는 소리가 간간이 새어나왔다

월남전의 영웅

미남의 소위를 흠모하는

여고생들의 사연들이었다

 

그의 침대 머리맡에는

언제나 꽃봉투가 한 뼘씩 쌓여있었다

이리 누워 읽고 저리 누워 읽었다

간간이 문주란의 돌지 않는 풍차를 부르면서

약간 음치이긴 해도

특유의 가락과 감정이 있었다

고개를 약간 뒤로 젖힌 채

눈을 지그시 감고 목을 좌우로 저어가면서

소리를 뽑아내곤 했다

 

하지만 그 모습은

더 이상 보이지 않았다

텅 빈 침대 위에는

임자 잃은 꽃봉투만 쌓여갔다

그는 침대 밑에

귀가 쫑긋하게 올라간

귀여운 황색 강아지를 길렀다

 

주인을 잃은 첫 날부터

그 강아지는 식음을 전폐했다

병사들이 안아주고

밥을 떠 넣어 줘도 먹지 않았다

매일 밤 내는 애조 띤 울음소리가

병사들의 마음을 아프게 했다

 

어느 날 그 강아지는

천막이 보이는 모래 언덕

뜨겁게 달아오른 모래위에

잠들어 있었다

그 강아지의 죽음과 함께

소대장에 대한 추억도 소멸돼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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