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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휘관은 전장의 경영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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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09-11-17 15:51 조회10,960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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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대의 정문인 위병소, 여기가 불친절하면 부대 이미지가 상한다. 외부인이 전화를 걸어왔을 때, 교환병이 상냥하지 못하거나 전화 연결을 끝까지 보살펴 주지 않아도 이미지가 상한다. 야전변소, 취사장, 식당이 불결해도 이미지가 상한다. 나는 이 세 가지를 위해 많은 훈련을 시켰다. 부대 밖에 나갔을 때, 나는 내 신분을 속이고 가끔 포대에 전화를 걸어 교환병의 친절 정도를 점검해 보았다. 아무리 규모가 작은 야전부대라 해도 근본적인 위생 시스템과 폐수처리 시스템이 갖추어지지 않으면 파리와 악취가 퍼진다. 맑은 물속을 들여다보는 것을 꽃을 보는 것보다 더 좋아했던 나는 이런 것이 참 싫었다. 내가 월남 전쟁터에서까지 위생과 폐수에 신경을 쓴 것은 월남의 마을 주변을 오염시키기 싫어서라기보다는 단지 부대의 청결을 위해서였다. 부대의 한 구석에서 냄새나는 물이 흘러나가고 거기에 파리와 모기가 서식하는 것은 상상하기조차 싫은 일이었다. 취사장과 샤워장 바닥의 구석에 오물이 끼어있는 것도 싫었다. 그래서 나는 물 한 통만 버리면 자동적으로 청소가 될 수 있을 만큼 바닥을 경사지게 했고, 오물이 끼지 않도록 반들반들 하게 갈게 했다. 여기에서 배출되는 하수는 송유관을 통해 지하에 묻어놓은 콘크리트 탱크로 집중됐다. 탱크 밑바닥에는 침전물이 가라앉고 위에는 맑은 물이 떴다. 맑은 물은 파이프를 통해 철조망 밖으로 흘러나갔고 침전물은 가끔씩 뚜껑을 열어 꺼내다가 폐유를 부어 태웠다. 그리고 그 맑은 물이 나가는 곳에도 가끔씩 소독약을 붓도록 했다. 포대 주변은 예상했던 대로 파리도 없고 냄새도 없었다.


야전에서 냄새나지 않는 화장실을 갖는다는 것은 얼른 보면 불가능한 것으로 생각될지 모른다. 그러나 골몰히 생각을 하면 언제나 방법은 있다. 변소 건물 전체를, ‘깨끗하게 다듬어진 나무’판으로 지었다. 포탄을 포장했던 나무판들이었다. 용변시의 디딤 바닥은 지면으로부터 1m 높이에 부상하도록 설치했고, 올라가기 위한 계단도 나무로 만들었다. 발판 밑 1m 높이의 공간에는 드럼통을 반으로 잘라 만든 변기통을 밀어 넣었다. 그리고 드럼통 바닥에는 남아도는 비닐 조각을 깔아 드럼통을 항상 깨끗하게 유지했다. 변을 본 병사는 하얀 분말의 DDT를 뿌리도록 했다. DDT로 하얗게 덮인 변에는 파리가 내려앉기조차 거부했다. 하사관들은 DDT를 전혀 사용하지 않는 다른 부대들을 돌면서 남아도는 DDT를 얻어다가 언제나 넉넉하게 쌓아두고 있었다. 저녁때면 변기통들을 갈퀴로 끌어내 폐유를 붓고 태웠다. 신기할 만큼 남는 재도 미량이었다. 옥외 화장실 바로 옆에는 따로 소변기를 만들었다. 구덩이를 깊게 판 후에 바다 모래를 가져다 부었고 그 위에 소변기를 설치하여 배수가 잘 되도록 했다. 사관학교 시절에 고안했던 ‘최후의 한 방울론’이 여기에도 적용됐다. 그리고 대변을 보기 전에 반드시 소변을 먼저 보게 했다. 변기통에 쌓여진 변은 사방으로 통하는 바람에 저절로 건조되어 냄새가 별로 없었다. 한번 깨끗하게 유지한 야전변소는 언제나 깨끗하게 유지됐다. 한번은 포병 사령관님이 내려오셔서 위생시설과 내무반 환경을 둘러보고는 감탄을 연속했다. 나더러 이다음 서울시장을 하라는 농담까지 하셨다. 그 후부터 포병 사령관님은 각 포대로 부임해 가는 대위들에게 나의 포대를 견학하고 오라며 3일간의 견학기간을 주셨다. 사관학교 3년 선배 한 분은 한국에 돌아와 그때의 일을 이렇게 고백했다. “야, 지대위. 사실 나는 그때 후배가 지휘하는 부대로 견학하러 간다는 게 좀 뭐해서 다른 동기생 부대에 가서 실컷 놀다가 사령관한테는 주어들은 소문으로 너를 칭찬했다. 많이 배우고 왔다고 했지. 허허”


전쟁터에서 포병과 보병과의 관계는 별로 좋지 않다. 6⋅25 때에는 보병이 포병의 지원을 얻기 위해 관측장교에게 닭고기를 바쳤다는 우스개 소리도 있었다. 그때에는 포탄이 부족했고, 그래서 끗발 있는 관측장교라야 포탄을 지원받을 수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월남전에서는 달랐다. 통상 보병장교들은 포병장교를 포를 쏘는 하나의 기능인, 자기의 명령에 따라 포를 날리는 하수인쯤으로 생각했다. 그래서 포병장교의 비위를 거스르는 보병 지휘관들이 왕왕 있었다. 하지만 포병은 보병들이 생각할 수 없는 대포병전을 수행한다. 거기에는 보병이 알 수 없는 지혜와 전술이 필요하다. 고객은 왕이라 한다. 하지만 대부분의 고객은 눈먼 왕이다. 기술을 가진 사람들이 고객이 필요로 하는 상품을 만들어 내 놓으면 그 때에야 비로소 살까 말까를 결정하고, 좋다 나쁘다를 평가한다. 이렇듯 보병도 눈먼 왕에 불과했다. 포병전술로 갖가지 지원 상품을 개발해 주어야 눈먼 왕은 비로소 “그거 참 좋소. 제발 그것 좀 해주시오”라고 선택하는 것이다.


유능한 보병 지휘관이라면 다른 병과들의 도움을 받아 내는데 영리해야 한다. 포병, 전차, 헬기, 불도저, 통신, 공병 등 다른 병과 장교들의 도움은 물론, 공군과 해군의 능력까지도 잘 얻어내는 지휘관이 유능한 지휘관이다. 전쟁이란 제한된 시간 내에 다양한 장비들을 결정적인 공간에 집중시키는 전장의 경영이다. 경영이란 수많은 타인들의 능력을 활용하여 목적을 달성하는 기술이다. 따라서 전장의 경영자인 지휘관은 전문 특과들의 기능을 존중해주고 수많은 타인들을 인격적으로 대해야 마음으로부터의 도움을 받을 수 있다. 이런 도움들을 시간계획에 따라 스케줄링 하는 것이 바로 디지털 시대의 작전계획인 것이다. 보병의 주 무기는 소총이다. 보병이 왕이라는 말은 그야말로 나폴레옹 시대에나 유행했던 옛 노래에 불과한 것이다. 보병들은 지금 이 순간에도 이런 시대착오적 쇼비니즘에 깊이 빠져 있다. 포병과 항공의 위력은 대단하다. 그들은 그들대로의 능력이 있다. 하지만 보병장교들은 우쭐한 기분에 취해 있었다. “어이, 포병, 이리 좀 와봐. 여기, 여기, 여기를 좀 때려, 알았어?” 지휘봉이나 지시봉 같은 걸로 지도를 가리키며 이렇게 주문했다. 보병장교들의 거친 매너, 포병장교들은 무시당한다는 생각에 반사적으로 저항했다. “이 보시오. 포병에도 전략과 전술이 있고, 포탄의 전략적 배분이란 게 있어요. 우리가 보병의 종인 줄 알아요?” “포병이 쏘라면 쏠 일이지 무슨 잔말이 많아.” 보병과 포병간의 알력은 대개 이런 것이었다.


내가 29세의 나이로 포대장으로 부임하니까 바로 이웃에 있는 보병 대대 상황실과 포대 상황실 사이에는 이러한 식의 기 싸움이 진행되고 있었다. 나는 처음 며칠 밤, 보병 상황실에 올라가 시간을 보냈다. 그들의 상황을 지도에서 직접 파악하고 포병 지원방법을 스스로 창안해서 “이렇게 이렇게 하면 어떻겠느냐” 제안들을 했다. 보병 작전장교는 나보다 사관학교 2년 선배였는데 이런 나의 지원방법을 매우 반겼다. “아, 그렇게도 해줄 수 있어요? 고맙습니다. 부탁합니다” 며칠간 이렇게 하다 보니 보병대대 상황에 대해 일정한 패턴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때부터는 일일이 보병 상황실에 가지 않아도 그들로부터 상황만 전달받으면 지원방법을 구체화할 수 있었다. 나의 적극적인 지원방법에 대해 중령인 보병 대대장이 극찬을 했다. 이러한 칭찬은 나의 직속상관인 포병 대대장에게도 전달됐다. “여보, 브라보 포병 지대위 있지 않소. 아, 그 친구 대단해. 싹싹하고! 밤마다 우리 상황실에 오잖아. 어쩌면 그렇게 가려운 곳을 잘 긁어 주는지” 포병 대대장님에게는 “자식 참 잘 두었다”는 식의 칭찬이었다.


어슴푸레 땅거미가 내려앉기 시작하면 중대장들이 중대원들을 이끌고 매복 작전을 나갔다. 검정 칠을 하고 나가는 그들의 얼굴은 언제나 무거워 보였다. 상부에서는 A지점으로 나가라 하지만 그곳은 기분 나쁜 곳이라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융통성 있는 중대장들은 무엇 때문에 여기에서 죽을 필요가 있느냐며 B지점으로 나갔다. 또한 이들은 상부의 작전장교를 믿지 않는다. 그들은 작전 현실을 잘 알지도 못하면서 예하 지휘관과 의논 한번 해보지도 않고 일방적으로 작전명령을 내렸다. 이렇게 해서 B지점으로 매복을 나가는데, 만일 포대장이 그 사실을 알지 못하고 상부에서 공식적으로 내려오는 작전상황만 전달 받으면 포병은 B지점에 부대가 없는 줄로 알고, 포를 날려 우군을 살상할 수 있다. 그래서 보병 중대장들은 작전 출동을 하면서 길목에 있는 내게 들려 눈을 찡긋한다. “나 B지점으로 나갑니다”


어느 날 나의 포진지에서 날아간 포탄이 밀림 속에서 작전을 하고 있던 아군 보병들을 강타했다. 하필이면 제12중대의 4개 소대장이 모두 부상을 당했고, 4명의 분대장이 중상을 입었다. 무전기에서 아우성 소리가 들려왔다. 나보다 사관학교 2년 후배인 중위가 뛰어와 다급하게 외쳤다. “포대장님, 우리 포가 보병을 때린 모양입니다. 부상을 많이 당했다고 합니다. 포 사격은 중지시켰습니다” 나는 거의 반사적으로 사격지휘 망루에 올라가 소리를 쳤다. “전원 동작 그만! 현재 서있는 위치에서 한 발작도 움직이지 말라. 선임하사와 포반장들은 즉시 내 앞에 집합하라. 155밀리 포반장들도 집합하라” 모든 병사들의 위치를 현재의 위치에 동결시킨 것은 실수를 저지른 포반 요원들이 처벌을 피하기 위해 은근슬쩍 증거를 인멸할 것에 대비한 조치였다. 간부진 5명을 뽑아 1번포로부터 방향포경이라는 조준경의 눈금을 일제히 점검하도록 했다. 그 결과 내 책임 하에 있는 6문의 105밀리 포에는 전혀 이상이 없었다. 사고를 일으킨 포는 나의 진지로 파견되어 독자적으로 포를 운영하는 155밀리 포반에 있었다. 정비를 한 후에 조준경의 영점을 제대로 맞춰놓지 않고 편각을 장입한 것이 화근이었다. 예를 들면, 45도 동쪽으로 지향해야 할 포구가 65도 동남쪽으로 지향한 것이다. 마치 체중계의 바늘을 0에 맞추지 않고 30에 맞추어 놓은 후 몸무게를 재는 것과 같은 것이었다. 이렇게 재면 70kg이 100kg으로 되는 것이다.


전광석화 같은 조사로 내게는 책임이 없다는 것이 증명됐다. 그 후 내가 나 자신을 생각해봐도 어떻게 그런 순발력이 나왔는지 대견스러웠던 장면이었다. 155밀리 파견반을 맡고 있던 중위와 하사관들이 자기들의 실수였음을 인정했다. 하지만 졸지에 귀한 부하들을 헬리콥터에 태워 병원으로 후송 보낸 보병 중대장은 제정신이 아니었다. 며칠 후 작전이 끝나자 그는 내게 와서 울화를 터트렸다. “다른 포대장이었다면 총으로 쏴버렸을 겁니다. 당신의 순수해 보이는 얼굴이 당신을 살린 겁니다” 그 중대장은 그 후 2성 장군으로 예편했고, 사건 후 33년 만에 우연히 만나 여러 번 술잔을 나누기도 했다. 60이 넘은 나이에 다시 만나 소주잔을 주고받았을 때 그는 이렇게 회상했다. “포대장을 총으로 쏘아버릴 생각까지 했지만 막상 포대장의 얼굴을 보니 선하고 약하게 보여 오히려 정이 갔습니다”


월남전에서 나는 산포(山砲)에 대한 개념을 터득하는 기회를 가지게 됐다. 대형 헬기로 포를 산봉우리에 날라놓고 산에서 직접 아래를 내려다보면서 포를 쏘는 전술이다. 나는 도봉산, 삼각산 등에 올라 서울 북방에 전개된 평야를 내려다 볼 때마다 산포를 생각하곤 했다. 포를 산정과 능선에 배치하면 얼마나 좋을까에 대해서다. 평야를 가득 메우며 전진하는 대규모의 적군을 장시간 고착시키는 데에는 산포가 최고라고 생각했다. 곡사포는 적을 직접 볼 수 없는 먼 곳, 산 뒤에 있다. 105밀리 포만해도 사정거리가 15㎞나 되기 때문에 전선으로부터 통상 10㎞ 내외 거리에 위치한다. 포진지와 적군 사이에는 산들이 있다. 그래서 포병진지에서는 적의 움직임을 직접 볼 수 없다. 곡사포를 쏘려면 적과 마주하고 있는 포병 관측장교의 눈을 빌려야 한다. 보병 중대장과 함께 행동하는 관측장교가 적의 위치를 지도에 표정해서 후방에 있는 포진지에 알려주면, 포진지의 계산조가 포의 상하좌우 각도와 화약의 양을 계산해서 포반 병사들에게 알려준다. 그제야 포반 병사들은 포구를 돌리고 포탄을 꺼내고, 신관을 연결하고, 화약을 집어넣고 방아쇠를 당기는 것이다. 그래서 반응속도가 느린 것이다.


하지만 산에서 쌍안경을 가지고 평야를 내려다보면서 포를 쏘면 마치 소총을 쏘는 것처럼 빠르다. 적이 들어차 있는 평야에 바둑판식으로 금을 그어 정사각형 정점에 포를 한발씩 날린다면 온 천지에 콩을 볶는 듯한 공포감을 주게 된다. 이는 내가 포대장을 하면서 적의 박격포 공격을 퇴치했던 ‘포에 의한 심리작전'의 성공 사례이기도 하다. 이렇게 바둑판 네 귀퉁이마다 포를 날리면 평야에 널려진 적군은 전후좌우 어느 곳으로도 움직일 수 없게 된다. 포병 사격이 끝날 때까지 엎드려 있을 수밖에 없다. 이때 전투기와 무장헬기 등의 공습이 이어지면 대량살상을 꾀할 수 있다. 월남에서는 보병의 작전지역이 포병기지로부터 너무 멀리 떨어져 있어서, 포 자체를 작전지역으로 수송해야 할 때가 많았다. 모든 포를 나를 수는 없기 때문에 통상 보병대대 규모 작전에는 2문의 포를 산봉우리로 공수할 때가 많았다. 헬리콥터에 의한 포병의 공중기동 작전인 것이다. 이는 월남전 특징 중의 하나였다. 내가 직접 지원하는 보병은 제2대대였지만, 나의 상관인 포병 대대장님은 1대대와 3대대가 작전을 나갈 때에도 나에게 부탁을 했다. 다른 포대에 맡기려 해도 믿음이 가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나는 되도록 많은 경험을 쌓는 것이 좋다고 생각하여 쾌히 복종했다. “예, 대대장님, 알겠습니다. 걱정 마십시오.”


보병 제2대대장과는 늘 친숙하지만 다른 대대장들은 안면조차 없었다. 그런 보병 대대장을 작전지역에서 처음으로 만나면 분위기가 서먹서먹했다. 파월된 지 얼마 안 되는 보병 제1대대장은 덩치 큰 포가 대대본부와 같이 배치된다는 사실에 대해 매우 못마땅해 했다. 소리를 내는 포 때문에 대대본부가 베트콩의 표적이 된다는 것이었다. 작전을 숨어서 해보려는 소극적인 생각이었다. 하지만 그 대대장 역시 상부의 명령이라 어쩔 수 없었다. 보병대대 본부와 2문의 포가 산봉우리에 함께 진을 쳤다. 나는 그 2문의 포를 지휘하려고 산정으로 나선 것이다. 낮에는 기세등등하던 대대장이 밤이 되자 매우 초조해했다. 낮에는 눈 아래로 내려다보이던 계곡이 밤이 되자 시커먼 지옥처럼 보였다. 그 밑에서 마치 베트콩 대부대가 검은 옷을 입고 떼를 지어 올라오는 것만 같은 상상을 불러일으켰다.

“대대장님, 기분이 좀 어떠십니까?”

“뭐 좀 그렇습다만…”

“포 소리를 좀 내 드릴까요? 그러면 좀 안정이 되실 겁니다.”

“한번 해 봅시다.”

기분 나쁘게 부각되어 오는 시커먼 계곡에 대고 2문의 포가 포문을 열었다. 신관에 0.3초를 장입하고 소위 ‘영거리사격’을 시작했다. “펑”소리를 내며 포탄이 포구를 떠나자마자 200미터쯤 날아가 정글 위에서 째지는 소리를 내며 작렬했다. 연속적으로 작렬하는 위력적인 소리에 잔뜩 움츠렸던 가슴들이 활짝 펴졌다. 겁에 질려있던 보병들이 활개를 치고 나와 손뼉을 쳤다. 이게 바로 포의 위력이었다. 전쟁터에서 적막은 간을 오그라들게 한다. 어떤 소대장은 매복을 나가 히스테리를 일으키면서 소리를 지르기도 했다. 비밀이 보장돼야 할 장소에서 소대장이 소리를 지르니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었다. 그래서 어떤 중사는 다수의 안전을 위해 그 소대장을 처치할 생각까지 했었다고 한다.


나의 병사들은 그 어느 포대보다도 더 많은 일을 하면서도 불평하지 않고 내가 하려는 일을 마음 편하게 하도록 해주었다. 처음엔 그토록 거칠었던 병사들이 불과 2-3개월이 지나면서 양처럼 순해지기 시작했다. 나의 직속상관인 포병 대대장님은 내 병사들을 공작용 재료 같다고 표현했다. 내가 땅에다 원을 그리든 네모를 그리든, 일단 그림만 그려놓으면 병사들이 속을 채워준다는 것이었다. 내가 이끌던 120명의 부하들, 그들만 가지면 무엇이든 못할 것이 없었다. 나이 든 노 상사는 처음에 나를 애같이 취급했다. 하지만 얼마 안 가서 내가 나타나면 멀리에 있다가도 무거운 철모를 쓰고 땀을 흘리면서 뛰어와 경례를 붙였다. 조그만 부대이긴 했지만, 나는 어느덧 카리스마가 되어 있었다. 그리고 이임식에서 나는 이임사를 제대로 하지 못했다. 단상에 서자마자 병사들이 울먹였기 때문이었다. 나무판으로 얽어 만든 1m 높이의 단(壇)에는 “하면 된다”라는 검은 글씨가 남겨 져 있었다. ‘돌아가면 나도 남들처럼 자유와 평화를 마음껏 누릴 수 있겠지!’ 오직 이 하나의 소망을 간직한 채, 매일매일 달력에 X표를 긋기를 42개월, 한국 나이 27세로부터 30세에 이르기까지의 꽃다운 청춘을 나는 이렇게 전쟁터에 묻었다. 그리고 그 묻혀 진 한 토막은 훗날 다시 꽃이 되어 아름답게 피어오를 것이라고 나는 확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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