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재판부를 재판한다!(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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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지만원 작성일13-12-08 19:01 조회8,716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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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에 조언적 비판했다고 고소 당해
내 일생 최초로 겪는 재판의 고소인은 육사21기 이청남이었다. 그는 1998년 2월 10일에 서울지방법원에 나와 '말'지의 편집부장 최진섭을 엄벌해 달라는 고소장을 냈다. 당시 나는 '말'지나 한겨레, 경향신문들이 빨갱이 편에 서 있다는 사실을 까맣게 모르고 있었다. '말'지는 내게 “IMF를 당해 나라가 매우 어려운 처지에 있는데도 국방부가 국방비를 함부로 쓰고 개혁도 하지 않고, 특히 당시 사회를 가장 시끄럽게 했던 잠수함 사업에 대해서는 밀실 놀음을 하고 있으면서도 이를 지적하는 기자에 대해 국방부가 국방부 출입을 금지시키는 전근대적인 조치를 취한다며 이를 따끔히 지적하는 글을 써달라”는 부탁을 해왔다. 당시 이청남은 예비역 소장으로 김영삼 청와대에서 근무하다가 국방부 방위산업 실장이 되어 무서운 게 없는 사람처럼 행동했다.
'말'지는 1998년 2월호에 ‘IMF특집’을 기획했고, 그 중에 내가 기고한 "15조 국방비, 30%의 거품을 걷어내라"는 제목을 단 아래 글이 포함돼 있었다.
“문제의 근원은 군이 추진하는 대부분의 사업은 장교들의 발상에 의하여 추진되는 것이 아니라 기업주도로 이뤄지고 있다는 사실에 있다. 기업들이 장교에게 아이디어를 제공해 주고, 사업에 대한 교육도 시켜주며, 적지 않은 도장 값으로 매수하는 것이다. 이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한 정경유착은 절대로 근절되지 않는다. 군 스스로 과학적 분석의 질을 높이지 않는 한, 장교들의 두뇌는 기업에 의해 점령된다. ‘정보화 사회’라는 구호는 높지만, 세상 물정과 새로운 정보에 어두운 한국군 장교들은 앉아서 기업인들이 제공해 주는 정보와 새로운 지식을 그때 그때 받아들이기에 바쁘다. 머리가 비어 있는 장교들의 두뇌는 먼저 점령하는 사람이 임자다. 일단 어느 한 업체에 의해 세뇌당한 장교는 다른 경쟁업체의 접근이 귀찮아진다. 이미 형성된 기존 업체에 대한 호의적인 선입관은 하나의 소신으로 비화된다. 그 소신을 펴기 위해 장교들은 특정 업체를 적극 비호하게 된다. 돈 가진 장교를 먼저 점령하는 기업이 돈을 버는 것이다. 그래서 국방비는 먼저 본 사람이 임자라는 말이 있다. 이번 중형 잠수함을 둘러싼 파행이 이를 웅변해 준다. 이번 잠수함 도입을 둘러싸고 장관, 차관, 방위실장, 합참무기체계조정관, 국방부사업조정관 등이 한 재벌기업을 일사불란하게 밀실에서 감쌌다. 그들이 돈을 얼마나 챙겼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러나 그들이 공공연히 저지르는 파행은 ‘돈을 먹지 않고서는 저지를 수 없는’ 전대미문의 부조리다 (1998.2월호 p.132).
잠수함 사업이 어떻게 진행됐길래
나는 대한민국에서 율곡사업 13년을 분석평가한 유일무이한 전문가이고, 위 내용은 내가 국방연구원에 있을 때부터 장관 등에 수도 없이 진언하고 대안을 제시했던 내용들로 전문가의 의견이었다. 전문가의 의견이 법정에 서는 것은 그야말로 일대 충격이었다.
당시 잠수함 전문화업체는 대우와 현대 2개 회사로 지정돼 있었다. 그러나 1987년 전두환 의 특별지시로 대우에 1,200톤급 독일형 잠수함 건조사업이 수의계약됐다. 이에 따라 대우는 1987년부터 2001년까지 9척의 물량을 지정받고 생산 중에 있었으며 당시 6척의 잠수함이 진수돼 있었다. 대당가격은 환율 1:880으로 계산했을 때, 2억7천만 달러였고, 이는 국제가격에 비해 약 1억 달러 정도 비싼 것으로 평가되고 있었다.
대우가 건조하는 잠수함은 독일 HDW사에 "현존하는 1,200톤급 경잠수함" 이다. 1987년 당시 대우는 잠수함 방산업체로 지정되지 않고 있었다. 그 후 과다한 선수금 및 중도금, 특혜성 면제금, 뇌물성 금품수수 등 많은 의혹들이 끊임없이 제기됐었다. 1996년 독도문제가 불거지면서부터 대양해군의 필요성에 대한 여론이 비등했다. 이에 따라 해군은 이미 계획된 3,000톤급 대양형 잠수함사업을 서둘렀다. 하푼 미사일을 갖는 3천톤급의 대양형 잠수함을 갖어야 한다는 것이 중론이었다. 이청남이 오기 전에 군은 국방과학연구소에 80억원을 주어 연구시킨 결과 3,000톤급에 대한 소요가 결정됐고, 이는 합참의 소요문서에 그대로 반영돼 있었다. 그런데 이청남이 김영삼의 청와대로부터 내려와 방위사업실장으로 부임하면서 3,000톤급 소요가 비밀이라는 명분하에 밀실에서 다루어졌고, 3,000톤급 소요가 갑자기 1,500톤급으로 둔갑됐다.
그리고 그 1,500톤을 대우에 수의계약을 주기 위해 1997년 10월 20일, "1,500톤급 잠수함사업에만 적용되는 특별 예외규정"을 만들었다. 이 규정은 그때까지 25년간 지켜온 율곡사업규정은 물론 ‘국가를 대상으로 하는 계약에 관한 법률’(국계법)에도 전면 배치되는 것이었다. 국계법 제26조 제1항 제6호에 의하여 국가는 반드시 2인 이상으로부터 견적서를 받아야 한다. 국방부 훈령인 무기체계획득관리규정 역시 잠수함 전문업체를 복수업체로 규정하고 있다.
이에 따라 대우와 현대는 복수 전문업체로 이미 지정돼있기 때문에 현대를 반드시 경쟁에 참여시켜야 한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국방부는 "개량형잠수함사업관리규정"이라는 예외규정을 만들어 기존법을 무시했다. 이 예외규정은 율곡역사상 초유의 규정으로 오직 대우에 수의계약을 주기 위한 노골적인 예외규정이었다.
이에 대해 현대는 1997년 11월 18일 국방부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이에 맞서 이청남 방위실장은 97년 11월 21일 기자회견을 열어 "개량형잠수함은 대우와 수의계약 할 것이다"라고 발표했다. 97년 11월 28일 재판심문과정에서 판사가 국방부에 "대우와 수의계약을 할 것인가?"를 물었다. 국방부는 차기 잠수함에 대해 아무 것도 결정된 것이 없다"고 발뺌을 했다. 예외규정이 위법이 아니라면 발뺌할 이유가 하나도 없었다. 국방부의 대우 밀어주기 의혹에 관한 기사만 해도 100건이 넘는다.
당시에 프랑스는 실존하는 1,500톤급에 대해 2.4억 달러, 3,000톤급에 대해서는 3.5억 달러를 제의했고, 스웨덴은 실존하는 1,500톤급을 2억 달러에 제의했지만 어찌 된 일인지 그는 실존하지도 않는 독일 잠수함만을 고집했다. 기술능력을 평가한다며 기술평가단을 독일, 프랑스 등에 출장을 보냈다. 그리고 발표했다. “출장결과 역시 독일 밖에 대안이 없다”는 것이었다. 독일제품은 실존하지 않는 장비이기 때문에 개발단계에서부터 시작해야 했다. 원가규모와 기술적 성공여부조차 불투명했다. 더욱 기가 막힌 것은 개발조차 안 된 1,500톤급 잠수함을 3척씩이나 일괄계약하려 한 것이다.
이러한 파행은 율곡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었다. 장장 6개월에 걸쳐 수백 건의 신문기사, 사설들이 이런 파행을 질타했지만 그는 끄덕도 하지 않았다. 대담하게도 그는 기자회견까지 열어 “차기 잠수함사업은 대우에 수의계약 할 것이다”라고 공언까지했다. 그리고 1주 일 후 이것이 경쟁사인 현대와의 법정 싸움에서 문제가 되자 다시 번복하는 기자회견도 했다.
2013.12.8. 지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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