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자기방어도 못한 首防司 ...... 지만원 (2002.2.26)
25일 오전 3시50분 서울 육군 수도방위사령부가 민간인 2명에게 봉변을 당했다. 절단기로 철조망을 자른 뒤 침입해 초병들을 흉기로 찌르고 K-2소총 2정을 탈취해 달아났다. 빼앗긴 소총은 초소와 초소 사이를 왕래하는 2명 1개조로 구성된 동초(動哨)가 소지하고 있던 총이었으며, 총에는 공포탄조차 들어 있지 않았다고 한다. 동초 2명은 모두가 일등병이었다. 군이 늘 입버릇처럼 말하는 High-Low Mix(고참-신참 1개조) 개념조차 반영하지 않은 것이다.
군은 어쩌다 발생한 사고라고 말할지 모른다. 하지만 이번 사건은 군의 경계 및 작전능력이 매우 심각한 상태에 와 있다는 것을 짐작하게 하는 상징적인 사례다. 한마디로 시스템 없는 군사력의 진면목을 보여준 것이다. 더구나 수방사 담장은 지나가는 이들에게 위압감마저 줄 정도로 높다.
드높은 담장이 이렇게 뚫리면 담장이 낮은 일반부대들은 얼마나 쉽게 뚫릴까? 더구나 수방사 장병들은 엘리트 병력으로 알려져 있다. 엘리트 병력이 이 정도라면 다른 부대들은 또 어떠할까?
수방사는 서울을 지켜주는 총사령부요, 대통령의 근위대다. 최고의 군부대가 집안의 울타리 하나 제대로 경계하지 못해 겨우 두 명의 젊은이에게 대책 없이 뚫렸다면 나머지 부대들은 얼마나 허약할까.
담장만 높게 올리고 똘똘한 병사를 뽑아다 배치해 놓으면 경계와 작전이 제대로 될 것이라고 믿은 게 아닐까? 밀림의 왕자도 파리 한 마리를 잡으려면 온 힘을 순간적으로 집중해야 한다. 게으른 동작으로는 파리 한 마리 잡지 못한다. 수방사가 이러했다. 기지경계는 군부대가 해야 할 최소한의 자기방어다. 자기방어조차 제대로 하지 못하는 부대가 수도를 방위하는 엄청난 주 임무를 제대로 수행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수방사의 문제부터 짚어보자. 첫째는 시스템이 없고, 둘째는 정신이 해이해 있다고 본다. 2명 1개조의 동초는 형식적으로만 왔다갔다 한 것 같다. 공포탄을 쏘면 침입자가 겁을 먹고, 인접 병사에게도 침입자가 있음을 알리게 된다. 이는 가장 초보적인 경보수단이다. 하지만 이번 동초에게는 공포탄마저 지급되지 않았다.
그 다음은 침입을 알리는 경보시스템이다. 철조망의 구간 구간에 번호를 부여하여, 예컨대 침입자가 17번 구역의 철조망을 자르면 즉시 상황실에 있는 경보기 17번에 빨간 불이 들어오도록 해야 한다. 착안만 하면 누구누구가 받았다는 ‘용돈’ 정도로 해결할 수 있는 값싼 시스템이다.
그 다음은 강력한 침입자를 만났을 때의 행동요령이다. 이를 일반사회에서는 ‘표준화’라고 한다. 표준화는 과학적 운용의 상징이다. 군은 과학군을 지향하고 있다고 선전해 왔다. 하지만 군에는 표준화에 대한 노력이 없다. 울타리 부근 요소요소에 경보단추를 설치해 놓고, 침입자가 발견되었을 때 가장 먼저 몸을 숨기고 단추부터 누르게 해야 한다. 상황실은 그 단추의 위치가 있는 곳으로 5분대기조를 출동시킨다. 동초는 스스로의 힘으로 침입자를 잡으려 하지 말고 침입자의 움직임을 관찰하여 5분대기조에 알려야 한다. 이것이 선진군대의 발전방향이다.
우리는 보병더러 총을 쏘고 싸우다 죽으라 한다. 그러나 미국 보병은 많은 관측·통신장비를 짊어지고 숨어서 적을 관찰하여 화력부대에 알려준다. 1개 무장헬기는 대부대(大部隊) 보병이 갈 수 없는 깊숙한 곳에까지 가서 2개 대대 병력이 날릴 수 있는 화력을 쏟아붓는다.
경계병도 이와 같아야 한다. 경계병은 침입자를 때려눕히라고 있는 게 아니라 미국식 보병의 역할을 하라고 있는 것이다. 우리 군엔 이런 개념이 없다. 한마디로 군 간부들이 군 운용의 과학화에 전혀 관심을 갖지 않았다는 사실이 이번 사건을 통해 여실히 드러난 것이다.
( 지만원 /군사평론가 )
2002. 2. 25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