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희에 대하여 좌익이 하는 두가지 두드러진 거짓말은 박정희가 일본군이었다는 거짓말과 박정희가 남로당이었다는 거짓말이다. 이런 주장이 거짓말들임은 두가지 명제가 양립하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만약 박정희가 일본군이었다면 남로당이 입당 권유를 하였을리 있겠는가?
좌익은 박정희가 남로당 입당 권유를 받았던 일을 과장하여 박정희가 남로당이었다고 사기친다. 그러나 박정희는 입당 권유를 받았으되 결코 입당 서약하지 않았다. 그 시대에는 누구나 한번쯤은 남로당 입당 권유를 받았었다. 남로당 본래 명칭이 조선공산당이었는데 그들은 1945년 10월 갓 귀국한 이승만 박사에게도 입당을 권유했었다.
조선공산당원들도 독립운동가 명함을 들고 다녔었는데, 이승만 박사께서 건국의 목표를 위하여 그들을 포용하셨으되, 공산당 당수가 되어달라는 그들의 제의를 받아들이지 않으셨다. 박정희 역시 형 친구들과 친분은 유지하되 남로당 입당 제의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 시대 사람들에게는 만주국군은 일본군이 아니었다는 사실이, 한일합방 이후 태어난 조선인이 일본군 장교가 되는 것은 불가능했다는 사실이 너무도 분명했다. 조선인이 일본군 장교가 되는 것은 하늘의 별따기보다 힘들었으니 완전 불가능한 일이었다. 한일합방 후 일본은 조선인 군 입대를 30년간 금지시켰으므로 장교는커녕 사병조차 될 수 없었다.
그러면 누가 일본군 장교였는가? 첫째로, 그들은 대한제국이 국비장학금으로 일본육사에 유학보냈던 자들이었다. 1910년 나라가 없어지자, 일부는 독립운동하러 도망쳤고, 일부는 독립운동을 지원하기 위해 남아있었는데, 이들이 1930년대에 일본군 장군들로 진급해 있었다.
둘째로, 그들은 대한제국 국비장학생으로 일본육사에 입학해 30년 이상 일본군에 복무한 장군들 자녀들이었다. 1940년대가 근접해서야 일본은 일본군 장군들 자녀들 중에서 어쩌다 일년에 한명꼴로 일본육사 진학을 허용하였다. 이들이 해방 무렵에 육사를 졸업하였으므로 실제 일본군 복무 경력은 없었다.
박정희는 일본군 장교가 아니라, 만주국군 군관이었는데, 그 시대 사람들에게 만주국 군관이 일본군 장교로 혼동될 수 없음은 너무도 분명하였다. 자, 만약 박정희가 일본군 장교였다면 남로당이 입당 권유를 하였을 리 있겠는가? 박정희가 일본군 장교였다면 암살 대상 1호였지, 결코 남로당 입당 권유 대상일 수 없었던 것이다.
빨갱이들이 흔히 하는 거짓말 중에 박정희가 독립군을 토벌하였다는 거짓말도 있는데, 누구보다도 정보가 밝은 광복군이 1945년 8월 박정희를 광복군 중위로 영입한 사실을 어떻게 설명하려는가? 광복후 귀국하여 이듬해에 국군 초급장교가 된 박정희를 남로당이 영입하려 했다. 그렇다면, 광복군 못지 않게 정보가 밝은 남로당이 공산당 팔로군 토벌군을 입당시키려 노력했을리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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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학도 2009-11-09 오후 7:30 씽크마리치님. 독립국과 괴뢰정권은 국가 승인이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 엄격히 구별됩니다. 아무리 김일성 정권이 스탈린의 괴뢰정권이었다 하더라도 일단 러시아로부터 국가 승인을 받은 후에는 러시아와 정식 외교를 맺은 동맹국 관계입니다. 난징 정부는 괴뢰정부였습니다. 괴뢰정부일 경우에는 국가승인이 불가능하지요. 만주국은 국가승인을 받은 독립국이었습니다. 전혀 괴뢰정권이 아니었습니다. 님에게 독립국과 괴뢰정권의 차이를 설명하기 위해 조선총독부의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썩 좋은 예는 아니지만 님에게 국가 승인의 개념을 설명해 드리기 위해서입니다. 만일 조선이 국가승인을 받았다면 총독부가 설치되었을 리가 없었겠지요. 조선인은 일본 국적의 국민이었습니다. 그 이유는 조선총독부 통치 하의 조선은 독립국가가 아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누구도 만주국 국적의 국민이 일본 국적의 국민이라고 주장할 수 없었습니다. 만주국은 만주국에 거주하는 일본계 국민들도 공식행사에서 만주국 국가를 부르는 독립국이었습니다. 만주국 국민은 만주족이든, 중국계이든, 조선족이든, 일본계이든 몽고족이든 만주국 국기를 달고 올림픽에 출전하였습니다. 조선의 조선인은 일장기를 달고 출전했던 것과 엄연히 달랐어요. 만주국 국적의 국민이 일본인일 수 없듯이 만주국 국적의 군인은 일본군일 수 없었습니다.
역사학도 2009-11-09 오후 5:56 씽크마리치님, 저는 님을 좌익으로 몬 적이 없습니다. 그리고 좌익이 아니실진대 잘못 알고 계신 것을 바로 잡지 못하실 이유가 없습니다. 일본군복을 입은 적도, 일본으로부터 봉급을 받은 적도 없는 박정희는 일본군이 아니었습니다. 박정희가 만주국군이었으니깐 일본군이었다고 하는 주장은 조선시대 연대를 잘 모르는 외국인이 조선이 1910년 일본에 합방되었으므로 이순신 장군은 일본군이었다고 하는 주장보다 백배는 더 어처구니 없는 주장입니다. 자, 일본 육군본부의 수학에서 정규군이 아니었던 조선인 학도병도 일본군 범주에 속했으므로 모든 월급을 정확히 계산했으며 조선인 학도병 시신을 가족에게 보낼 수 없을 경우 일본 국립묘지에 안치했습니다. 그런데, 일본이 만주국군에게 단 한푼이라도 월급은 준 적이 있었던가요? 일본 육군본부의 수학에서 만주국군은 국적이 타국 군대였기 때문에 전혀 아무런 보상을 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직업군인으로서의 만주국 군관의 고용주는 엄연히 만주국 육군본부였습니다. 한국 상황의 예를 들어봅시다. 1970년 이전의 모든 국군의 봉급은 미국이 지불했습니다. 군복이며 무기며 군수품까지 미국이 지불했습니다. 그럼에도 한국군 국적이 미군 국적으로 바뀐 적이 없습니다. 하물며 전혀 일본으로부터 봉급을 받은 적이 없었던 만주국 군관 박정희가 어떻게 일본군일 수 있는가요? 박정희는 남로당원도 아니었습니다. 김대중이 서류상으로 명확하게 건준 소속이었던데 비해, 박정희는 가입하지 않았습니다. 단지, 남로당이 언제고 박정희가 가입해 주려니 기대하고 있었을 뿐이었습니다. 분명한 것은 남로당이 박정희의 가입 자격을 인정했다는 사실은 만주국군은 절대로 일본군이 아니라는 사실을 그들이 잘 알고 있다는 사실을 반증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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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째서 그것이 서류상으로만 맞는가요? 만약 일본의 외교행정과 행동이 달랐다면 그런 알을 하실 수 있겠지만 전혀 그렇지가 않았습니다. 한 예를 들어 드리겠습니다. 조 선 거주 일본인들의 안전한 송환을 위해 일본 정부는 최선을 다했습니다. 그러나, 만주 거주 일본족 70만명의 송환을 위해 노력하기는커녕 시베리아로 끌려가도 일본 정부는 그들, 즉 만주국 국적 소지자들의 문제는 만주국 문제이지 일본 정부 문제가 아니라며 전혀 거들떠 보지 않았습니다. 왜 70만명의 일본인이 시베리아로 끌려가도록 방관하였으며, 송환을 위한 노력을 하지 않느냐는 기자 질문에 일본 정부는 그 70만명의 일본인은 만주국 국민이지 일본 국민이 아니므로 그것은 만주국 문제이지 일본 정부의 문제가 아니라고 답변했습니다. 그것이 초지일관 일본 정부의 입장이었습니다. 일본은 1938년에 관동주 자유항을 만주국에 반환하면서 모든 만주국 거주 일본인들의 일본 국적을 말소하였습니다. 그것은 단지 서류상으로만 말소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이렇듯 일본국민이었던 자들도 만주로 이민간 후에는 일본 정부가 일본인으로 인정하지 않았는데, 어떻게 박정희가 일본군일 수 있었는가요? 당시 조선총독부 법에 조선인은 군인이란 직업을 가질 수 없었으므로 일본 국적으로는 박정희가 도저히 만주국 군관학교에 지원할 수 없었습니다. 만주국 입장에서도 그 학교가 반도의 조선인을 받아주는 학교가 아니었습니다. 박 정희는 만주는 발해의 유민의 후예들의 땅이라는 역사논리의 선상에서만, 즉 만주국 조선족의 신분으로서만 만주국 군관학교에 지원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처럼 일본 국적을 버리고 만주국 국적으로 만주국 군인이 된 박정희가 일본군이라는 주장은 천부당 만부당합니다. __________________
몽환마왕님, 1952년에 박정희가 미국육사로 단기 유학갔던 사실을 아실 것입니다. 그렇다고 누가 박정희를 미군이라고 부르는가요? 전두환 역시 두 차례 미국 유학을 했습니다마는 그 누구도 전두환을 미군이라고 부르지 않습니다. 박정희는 이처럼 해외로부터 위탁교육을 받은 유학생들만 따로 수업하는 유학생반에서 공부하였으며, 그의 제복은 일본육사생도 복장이 아니라, 만주국 군관학교 생도생 복장이었습니다. 일본육사의 입장에서 볼 때 박정희는 동문이 아니었습니다. 입학한 사실이 없으니까요. 3학년에 편입학하여 그의 전공분야인 과학만 전공하고 갔으니까요. 우리나라 육사에도 아프리카 국가들 등 여러나라가 위탁교육생을 보냅니다. 그들이 한국 육사를 졸업했다고 한국군인가요? 천만의 말입니다. 만주국 군관학교에서 1~2등만 국비 장학생으로 일본육사 3학년에 편입학시켰습니다. 대한제국도 수많은 국비 유학생을 일본육사에 유학시켰습니다. 심지어 중국도 쟝개석을 일본 군사학교에 유학보낸 사실을 아실 것입니다. 보세요. 박정희의 경우에는 1952년 미국 정부 초청으로 미국 육사에서 연구하였는데도 아무도 그를 미군이라 부르지 않았습니다. 그렇다면, 일본 초청이 아니라 만주국 국비 장학생으로 유학간 박정희가 어떻게 일본군이 될 수 있다는 말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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____________________ 역사학도 2009-11-10 오후 12:07 씽크마리치님, 일본이 만주국을 만든 사실이 없습니다. 만주국은 만주의 독립운동가들이 1932년에 건국한 국가였습니다. 보세요. 만주국은 영토가 한반도 전체의 다섯 배가 넘는 큰 나라요, 인구도 조선의 몇 배였습니다. 그런 큰 나라를 일본이 만들었단 말입니까? 일본이 배를 만들 수 있었을지 몰라도 전혀 그렇게 큰 나라를 만들지 못합니다. 만주족 입장에서 만주를 침략한 자들은 무장한족이었으며, 무장한족의 지배로부터 벗어나려는 만주족 독립운동의 결과로서 만주국이 1932년에 건국되었습니다. 만주국 건국에 조선족을 포함한 여러 민족이 동참한 바 있으나, 전혀 일본이 간여한 바 없었습니다. 관동주 자유항에 거주하던 일본계 만주인들도 건국에 한 역할을 하였으나 그들은 이미 만주의 언어와 문화에 동화된 사실상의 만주인들이었습니다. 관동군은 절대로 점령군으로서 만주에 있었던 것이 아닙니다. 그들은 주둔 비용을 지불하고 만주에 주둔해 있었습니다. 731부대가 있었을 때 만주에는 독립군이 없었습니다. 1921년 청산리 전투 이후 만주에는 독립군이 없었으며, 731부대는 그로부터 20 여년 후의 이야기입니다. 전혀 다른 시대의 이야기예요. 731부대에 붙잡혀간 독립투사는 없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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씽크마리치님, 님은 독립운동사를 전혀 모르시나요? 1921년 청산리전투를 끝으로 독립군은 러시아로 이주하였습니다. 그해에 러시아에서 자유시 참변이 있었는데, 좌익과 러시아에 의해 민족진영 독립군이 몰살된 사건이었습니다. 자유시 참변에서 죽음을 모면한 이들 몇이 상해로 왔습니다. 김좌진 장군마저 좌익 청년들에게 암살당하였고, 그후에 만주에서는 독립군이 형성되지 않았습니다. 1930년대에 만주에서의 조선인 무장단체들은 모두 마적단이나 공산주의자들 혹은 중국 공산당 팔로군 조선의용병뿐이었습니다. 그러나 1940년대에는 조선인 공산당 무장단체들마저 전혀 만주에 존재하지 않았었습니다. 만약 청산리 전투를 끝으로 1921년 독립군이 만주를 떠난 후에 독립군이 있었다고 주장하시려면 독립군 부대 이름을 대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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씽크마리치님, 팔로군은 중국 공산당 군대입니다. 만약 조선의용군이 독립군이라고 주장하시면 그들의 동북공정 논리를 정당화시키는 결과가 됩니다. 조선의용군은 엄연히 중국 공산당 명령을 받는 군대였으니까요. 팔로군은 전혀 조선독립운동을 도운 적이 없습니다. 단지 그들은 만주국 독립운동가들을 공격하였을 뿐이었습니다. 발해의 유민 후예들이 건국한 만주국을 침략한 것이 어찌 독립운동이란 말인가요? 동북공정 논리는 1930년대 초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그때 중국공산당은 티베트와 만주와 몽고에서 항일연군을 조직하였는데 그 목적은 항일이 아니라 티베트와 만주와 몽고 침략이었습니다. 공산당 군대를 항일연군이라고 불렀는데, 그들을 이용하여 티베트를 점령하여 반세기가 넘도록 지배하고 있으며, 만주국 역시 조선족을 이용해 1946년에 점령한 후 1953년에 중국 영토로 합병시켰던 것입니다. 만주족은 일제시대에 조선인들이 독립운동을 할 수 있도록 도왔습니다. 그런데 중국공산당에게 속아 이용만 당하고 만주국을 멸망시킨 것이 어떻게 독립운동이었다는 말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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씽크마리치님, 심지어 중국 공산당도 그 사실을 인정하였기에 연해주는 조선족 자치구임을 인정하였던 것입니다. 한때 만주가 동만주, 북만주, 남만주로 분리된 적이 있었는데, 동만주를 일본인들은 간도라 불렀으며, 1953년 중국영토로 편입된 후에 연해주로 개명하였습니다. 만주의 언어와 우리말과 아주 흡사합니다. 문화 역시 비슷한데, 그 이유는 발해의 유민들이 동만주에서 거주하였다는 사실로 설명될 것입니다. 조선말부터 조선인들이 동만주로 많이 이주하였지만 중국인들은 조선인이 땅을 소유하는 것을 법으로 금지하였어요. 그런데, 만주족이 조선족을 동족으로 여기고 땅을 소유하는 길을 열어주었던 것입니다. 박정희 대톨령께서 말씀하셨듯이 만주는 우리땅입니다. 만주국을 침략한 중국 땅이 아니예요. 티베트 원주인이 중국이 아니라 티베트 민족이듯이, 만주의 원주인도 만주족과 우리나라입니다. ____________________
씽크마리치님, 미국은 누가 세운 나라입니까? 프랑스가 세운 나라입니까? 독일이 세운 나라입니까? 화란이 세운 나라입니까? 영국에서 온 이민자가 가장 많았기에 영어가 공용어였지만 다민족이 미국 건국에 참여하였습니다. 만주국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만주국의 문제는 한족과 일본족 역시 건국에 참여하였다는 사실이었습니다. 그런데, 한족은 언제든 만주국을 전복시키고 다시 만주를 지배할 기회를 호시탐탐 노리던 내부의 적이었습니다. 그리고, 만주족은 일본족을 경계하였습니다. 만주국 건국 당시의 관동군은 일본군이 아니었습니다. 단지 그들은 관동주 자유항 수비대였는데, 전혀 일본의 통제를 받지 않았습니다. 만주국 독립운동가들을 무장한족의 지배를 벗어나기 위해 관동군의 도움이 필요했습니다. 그러나 어느 선에서 견제하는 것 또한 필요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만주족은 조선족과 손잡으려 했었던 것이며, 조선족 인재들을 등용하였습니다. 예를 들어, 정일권씨가 만주국군 최고위층 장교였으며 일본족 장교들은 정일권씨의 명령 하에 있었습니다. 몽고족과 유대인도 많았던 그 시대의 만주는 이민자의 천국이었습니다. 보세요. 중국에서는 전혀 조선인 커뮤니티가 형성될 수 없었습니다. 아무리 상해에서 수십 년 독립운동하여도 조선인은 땅을 소유할 수 없었습니다. 조선족이 합법적으로 토지를 소유하도록 도와준 나라는 만주국이었습니다. 만주족은 러시아의 남침을 막기 위해서, 그리고 때로 팔로군을 침략을 홀로 막을 수 없었을 때 관동군의 도움이 필요했습니다. 그러나 보다 튼튼한 독립을 위해서는 일본인들을 경계할 필요도 있었습니다. 만주족 입장에서 박정희 등 조선인들의 진출을 환영했던 것은 항일의 한 방식이었습니다. 그리고 박정희 입장에서도 만주족에는 발해의 유민의 혈통이 섞여 있었으므로, 그리고 조선족이 건국의 한 주체였으므로 충성의 대상으로 삼을 이유가 있었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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씽 크마리치님, 중일전쟁과 만주는 거의 아무런 관계가 없습니다. 일본 비행기가 미련하게 한반도를 걸쳐 만주에서 빙빙 돌다가 중국 본토로 갔다고 생각하십니까? 그것은 불가능했습니다. 일본 전투기들을 바다를 건너 최단거리로 중국으로 비행했습니다. 일본이 중국을 침략하기 위해 만주국을 이용했다는 주장은 무식한 주장입니다. 관동군은커녕 만주국군도 중일전쟁에 전혀 동원되지 않았습니다.
러 일 전쟁에 패배히였던 러시아가 1931년경 다시 만주를 침략하기 시작하니깐 만주국 건국의 필요성이 절실했던 것이며, 만주국군 홀로 러시아군의 침략을 막아내지 못하니깐 만소 국경 수비를 관동군에 의지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 관동군은 단 하루라도 만소국경을 떠날 수가 없었어요. 단 하루라도 만소국경을 떠나면 그날로 러시아가 침략해 오는데 어떻게 자리를 비우고 중일전쟁에 동원됩니까? 아직도 모르시겠습니다. 중일전쟁과 만주국 건국은 아무런 관계가 없어요. 인구 수천 만명의 만주족에게 그들의 독립국을 건설할 필요성은 아주 절실하였기에 만주국을 건국하였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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씽크마리치님, 박정희는 중일전쟁에 전혀 동원된 바가 없었다는 사실을 등소평 등 중국 지도자들이 더 잘 압니다. 박정희가 만주국 군관이었을 때 등소평이 중국 공산당 최고 지휘부 중 한 명이었습니다. 남로당이 박정희의 항일 경력을 최고로 인정하고 보증하여 남로당에 입당시키려 하였던 것처럼 등소평은 박정희를 중국 최고의 영웅으로 삼았습니다, 만약 그들이 만주국 군관을 일본군 장교로 여겼다면 그렇게 할 수 있었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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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tudy21.org/518/index.ht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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