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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정승화로 지향된 화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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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09-11-20 12:10 조회14,056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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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정승화로 지향된 화살 


                  


김재규가 왜 사형을 당했느냐에 대해서는 당시의 국민과 지금의 국민들 사이에 별 다툼이 없다. 하지만 정승화에 대해서는 전두환 시대의 정서와 민주화 시대의 정서가 판이하게 엇갈린다. 전두환 시대에는 정승화가 시해 현장에 있었고, 그 후 김재규를 비호하면서 내란을 방조한 죄인으로 인식됐고, 민주화 시대에는 전두환이 죄 없는 학자풍의 정승화를 체포하고 죄를 뒤집어씌움으로써 군 지휘권을 찬탈한 죄인으로 인식됐다. 권력이 누구의 손에 있었느냐에 따라 어제의 충신이 죄인이 되고, 어제의 죄인이 충신이 된 것이다.


무엇이 진실인가? 이제부터 사실을 알아보자. 10월 27일 새벽 01시 30분, 합수부(합동수사본부)는 김재규를 서빙고 분실로 데려가자마자 김재규로부터 김재규가 범인이라는 사실, 범행 근처에 정승화가 있었다는 사실, 그리고 김재규와 정승화가 같은 차를 타고 B-2 벙커로 함께 왔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알아냈다. 이어서 정승화가 김재규의 범행사실을 알면서도 대통령 시해사실을 최규하 총리 및 수사기관에 알리지 않고 은닉한 채, 김재규의 의도에 따라 비상조치를 했던 사실도 알아냈다. 이를 인지한 합수부는 정승화 총장을 구속하려 했지만 때는 한발 늦었다. 10월 27일 밤중인 00시 25분경에 국무위원들은 국무회의에서 정승화를 계엄사령관으로 임명했다. 이로부터 1시간 후인 01시 30분경에 전두환은 정승화의 혐의를 포착했다. 정승화는 참으로 아슬아슬한 시간 차이로 계엄사령관이 된 것이다. 일단 계엄사령관이 된 정승화를 2성장군에 불과한 전두환이 체포한다는 것은 감히 엄두조차 낼 수 없는 일이었다. 당시 계엄사령관의 위세는 대통령보다 더 강했다. 행정과 사법권을 한 손에 거머쥐고 절차를 생략한 채 총을 든 군인들을 통해 비상조치를 취할 수 있는 폭넓은 권한을 가지고 있었으며 이는 매우 살벌한 것이었다. 1996년 5월 27일 “역사바로세우기” 재판에서 이학봉은 1979년 10월 27일 새벽에 있었던 상황을 이렇게 진술했다.


나는(이학봉) 김재규의 진술에 의해 정승화가 사건 현장 부근에 있었고, 그 후 김재규와 같은 차를 타고 육본에 왔다는 사실을 알았다. 이를 즉시 보안사령관에 보고했고 이어서 보안사 요원들을 궁정동 사건현장으로 보냈다. 그 때까지 시해공범들이 남아 있어서 모두 체포했다. 이어서 수사요원들을 국군서울병원에 보내 시신을 감시하던 정보부 요원들을 무장해제하여 체포했다. 이어서 보안사령관에게 정승화의 구속수사를 건의했다. 정승화가 김재규와 함께 같은 차를 타고 육본 벙커로 오면서 최소한 김재규가 시해범일 거라는 의심을 하면서도 김재규와 머리를 맞대고 계엄선포 및 병력동원 등을 상의했고, 또한 승인 없이 전투부대를 동원하는 등의 행동을 한 것은 최소한 내란방조행위에 해당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보안사령관은 그렇게 하라고 승인했지만 곧 다시 나를 불러 정승화가 이미 계엄사령관으로 임명된 상태라 구속이 불가능하니 극비리에 내사하라고 다시 지시했다. 따라서 합수부가 10월 28일에 발표한 “박정희 대통령 시해사건 제1차 수사결과 발표”에서는 정승화에 관한 언급을 일체 하지 않았다. 한편 합수부는 시해사건이 김재규와 정승화가 주도한 조직적인 내란행위라 판단하고 군부에 지원 동조세력이 있을 것이라는데 촉각을 곤두세웠다. 정승화를 언급하면 그 지원세력이 일거에 들고 일어날 것이고, 이는 사태를 더욱 악화시킬 수 있었다.  따라서 극비의 내사가 필요했던 것이다.”


10월 27일 새벽에 있었던 이학봉과 전두환 사이에 오고간 위 대화의 내용들을 보면, 2.12는 이미 예약되어 있었다. 전두환은 “10.26이 국가전복을 기도한 내란행위이고, 여기에 관련된 자는 예외 없이 조사해야 한다”는 입장인 반면, 정승화는 “전두환에 잡히면 끝장”이라는 생각을 했을 것이다. 결국 정승화는 극비의 기습작전에 의해서만 체포될 수 있었던 성격의 사람이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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