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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 이래 북한의 도발 사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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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지만원 작성일11-01-14 15:04 조회21,080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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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국군장교와 판검사는 무조건 사형에 처하고,
    면장, 동장, 반장 등은 인민재판에 부친다"(1950년 6월 30일 포고문, 출처: "정치범은 자수하라"와 "반동분자 처리지침")
625.전쟁,1950~1953 개전-휴전까지의 ....

2011년의 지금으로부터 61년 전, 1950년 6월25일, 스탈린-모택동-김성주(자칭 김일성)의 계획적인 기습남침에 의해 3년간의 동족상잔의 참혹한 전쟁이 대한민국의 영토에서 일어났습니다.
소련의 스탈린은 소련이 직접 싸우지 않고 중국을 내세우려는 의도를 가지고 있었기에 모택동과 한반도 전쟁을 개략적으로 합의한 후 김일성에게 중국 동의 조건부 한국전쟁 개시 승인을 했고, 한국전 개전 후에는 중국을 한국전에 끌어들이기 위해 필사적 노력을 했다

“6.25전쟁은 스탈린이 계획·감독하고 김일성과 모택동이 주연과 조연 역할을 한 스탈린의 전쟁이었다. 스탈린은 1949년 10월 중국의 공산혁명 등 변화된 국제정세에서 김일성의 남침의지를 이용해 참전이 예상되는 미국과 중국의 국력 약화를 기도하고, 중국의 대서방관계 개선을 저지하고자 했으며, 모택동은 통일을 달성한 중국의 위신을 과시하기 위해 참전했다”

6·25한국전쟁은 김일성의 남침 흉계와 스탈린의 중국을 적극 이용한 세계전략 차원에서 발생한 전쟁이라고 말했다.<송종환 명지대 북한학과 초빙교수>

 1) “아 ! 잊으랴, 어찌 우리 그 날을~ ”
    한국전쟁 기간 동안 학살당한 민간인 총 122,799명, 납북자 수 84,532명 

▲ 한국전쟁 기간 동안 인민군과 좌익에 의해 학살당한 민간인은 총 122,799명
(‘대한민국통계연감’, 1952년 발간)에 이른다.
서울을 점령한 인민군의 경우 미처 피난을 가지 못한 경찰이나 군인 그리고 이들의 가족들을 체포해 그 자리에서 인민재판에 회부했으며, 체포를 거부할 시에는 즉결처형을 했다. 인민군은 공무원, 군, 경찰, 학자 등 소위 인텔리 계층을 최우선 대상으로 학살했다. 그 대상에는 부녀자와 어린이들까지 대거 포함되었고, 반동분자로 낙인찍히면 가족은 말할 것도 없고 먼 친척까지 몰살당했다.

전라남도' 지역 피살자만 43,511명 (전체의 72.6%)
명부에는 5만9964명의 피살자 가운데 전남 지역에서 피살된 사람이 43,511명으로 전체의 72.6%를 차지하고 있다. 다음으로 전라북도(5,603명), 충청남도(3,680명), 경기도(2,536명), 서울시(1,383명), 강원도(1,216명) 順이다.
그 외 경상남도 689명, 충청북도 633명, 경상북도 628명, 제주도 23명, 철도경찰 62명이 좌익에 의해 피살된 것으로 기록됐다. 전체 피해자 가운데 남자가 44,008명, 여자가 15,956명이다.
여성 피살자 15,956명 가운데 13,946명이 전남 지역에서 피살됐다. 피살자가 집중된 전남 지역에서도 특히 영광군의 피해가 가장 컸다. 전남 지역 피살자 43,511명 중 절반에 가까운 21,225명이 영광군에서 피살됐다. 영광지역 여성 피살자는 전국 여성 피살자의 절반 가까운 7,914명이다.
지금까지 정리된 학자들의 조사에 따르면 6·25 당시 인민군과 바닥빨갱이들에 의해 학살당한 목사·신부·장로·수녀들은 신원이 밝혀진 사람만 174명에 달한다. 또한 인민군이 퇴각하며 납북된 종교인들도 184명에 달하는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인민군, 평양 칠골리에서만 2,500여명 학살
김일성의 북한정권은 사람들을  줄로 묶어 총살한, 평양의 칠골리에서 2,500여명, 평양 승호리 인근의 사도리 뒷산에서 4,000명 정도가 학살당했고,함흥에서는 함흥감옥에서 700명, 충령탑 지하실에서 200명, 정치보위부가 있는 3곳의 지하실에서 300명, 덕산의 니켈 광산에서 6,000명, 반룡산 방공굴에서 8,000여 명이 학살당했다. 또한 함흥시에서만 모두 1만 2,000여 명이 퇴각하는 김일성의 지시에 의해 학살당했다. (출처: "자유공화국 최후의 날", '지옥유폐 130일-원산 대학살 사건의 전모', 박계주 著)

▲ 6.25 전쟁 당시 함흥시에서만 모두 1만 2,000여 명에 이르는 무고한 양민들이 퇴각하는 김일성의 지시에 의해 학살당했다. 위 사진에서 보는것처럼 인민군의 학살에는 남녀가 따로 없었다.(사진출처:美 국립문서기록보관청)

이처럼 만인이 보는 앞에서 학살을 당한 민간인이 122,799명(‘대한민국통계연감’, 1952년 발간)이고, 납북자 수는 84,532명, 전쟁 중에 죽은 민간인이 244,633명이다.
<자료1. 김일성의 대량 학살 책임을 보여주는 戰時하 김일성의 발언 및 지시>

☞ -"국군장교와 판검사는 무조건 사형에 처하고, 면장, 동장, 반장 등은 인민재판에 부친다"(1950년 6월 30일 포고문, 출처: "정치범은 자수하라"와 "반동분자 처리지침")

 ☞ 출처: 공보처 통계국 '6.25 사변 민간 피해 조사표'. 단위 : 명
지역 사망     학살     납치      
서울 29,688   8,800    20,738
경기 62,621   7,511    16,057
충북 24,320   3,409    6,312
충남 23,707   5,562    10,022
전북 40,462   14,216   7,210
전남 14,193   69,787   4,171
경북 35,485   6,609    7,534
경남 19,963   6,099    1,841
강원 17,122   6,825    10,528
총계 사망-244,663 / 학살-28,945 납치-84,532
(교전이 직접 벌어지지 아니한 제주는 제외) / <자료 3. 북한지역에서 발생한 북한군 양민 학살>

☞ 6.25 피해 현황
 1950년 6월 25일부터 1953 년 7월 27일까지 한국전쟁의 피해는 다음과 같다.
국가               전사자수            부상
한국  ---       227,800 명    ---  717.100 명
미국  ---        33,747 명    ---   92,134 명
영국  ---           710 명    ---    2,278 명
터키  ---           717 명    ---    2,246 명
오스트레일리아 -     291 명    ---     1,240 명
캐나다 ---          309 명    ---     1,055 명
프랑스 ---          2888 명   ---      818 명
태국  ---            114 명   ---      793 명
네덜란드  ---        111 명    ---     589 명
콜롬비아 ---         140 명   ---      452 명
에티오피아  ---      120 명   ---      536 명
필리핀  ---           92 명    ---     299 명
벨기에  ---           97 명    ---     355 명
뉴질랜드  ---         34 명    ---      80 명
남아프리카 공화국 -   20 명    ---       16 명
룩셈부르크  ---        7 명    ---       21 명
   ( http://www.geocities.com   에서 )

< 공산군의 병력 손실 >
전투손실 ---    인민군   ---    520,000  명
                 중공군  ---     900,000  명   
비전투손실 (非戰鬪損失)   ---   406,000  명
< 일반주민 피해 >
남한  --   사망자수     ---   230,000 명  (인민재판, 폭격, 등)
            실종자수    ---    290,000 명  (拉北 등)
            학살자수    ---    120,000 명  ( 인민재판)
북한  --    사망, 실종, 등 총계 -- 2,000,000  명
(육군사관학교 교재 한국전쟁사 555 쪽,   국립중앙도서관 소장 도서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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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me  지만원 
 
양측의 병력수가 최대였던 1953년 휴전직전의 병력
◈ 국군
- 지상군병력:576,441명
육군:3개군단 18개사단, 해병 1개연대전투단(증강편제) 병력-576,441명
- 해군:1개 함대 병력-15,000명
- 공군:1개 전투비행단, 1개 훈련비행단 병력-11,461명
- 병력총계: 602,902명
◈ 북한군
- 육군:6개군단 18개사단, 7개 보병여단, 7개 전차연대 : 약 45만명
- 해군:4,442명
- 공군:6개사단 19,350명
- 병력총계:473,792명
◈ 유엔군(지상군만)
3개군단, 8개 보병사단, 1개 해병사단:341,628명
◈ 중공군(지상군만)
19개군, 58개 보병사단:약 135만명
내용출처 : 국방군사연구소 1997년발간 
  ☞ 아래는 주로 UN군의 북진으로 전황이 불리해지자 인민군 주력부대가 퇴각하며
    발생한 학살이다.
1. 함남 원산(元山)학살
- 발생장소 : 원산시 시내, 신풍리 여왕산, 원산 앞바다, 원산인민교화소
- 방식 : 4명 1개조로 묶어 방공호에 집어넣고 집단총격으로 사살
- 희생자 수 : 1,700여명
2. 함남 함흥학살
- 발생장소 : 함흥인민교화소, 충령탑 지하실, 정치보위부 지하실, 함흥북쪽 덕산니켈광산  반용산 방공호
- 방식 : 집단 무차별 총살, 방공호의 경우 폭사, 우물 생매장, 투석
- 희생자 수 : 12,000여명 (납치자, 실종자 포함되지 않은 수임)
3. 강원 고성(高城) 학살
- 발생장소 : 교외 저수지
- 방식 : 저수지로 몰아넣은 후 폭사
- 희생자 수 : 800명
4. 함남 영흥(永興) 학살
- 발생장소 : 영흥국민학교 운동장, 영흥 방공호
- 방식 : 무차별 난사
- 희생자 수 : 1,520명
5. 함남 순천(順川) 학살
- 발생장소 : 순천 북서쪽 터널
- 방식 : 무차별 난사
- 희생자 수 : 200명
6. 함남 신고산(新高山) 천주교도 학살
- 발생장소 : 인근 과수원(사과밭)
- 방식 : 장작 몽둥이로 집단 가격 후 살아남은 자는 총살
- 희생자 수 : 190명
7. 황해 해주(海州) 학살
- 발생장소 : 해주형무소 등
- 방식 : 독살, 해주지역 우물에 집단 생매장 후 돌로 무차별 가격, 소사(불 태워 죽임)
- 희생자 수 : 아이 업은 부녀자들 포함 1,200여명 (이 학살은 종군기자들에 의해 UN에 보고됨)
8. 함북 갑산군(甲山郡) 학살
- 발생장소 : 양유리 줄버드나무 밑, 부흥리 굴, 지경리 느티나무 밑, 읍내 우물 다수
- 방식 : 총살, 우물에 집단 생매장
- 희생자 수 : 420명
9. 함남 고원군(高原郡) 학살
- 발생장소 : 운곡면 차탄 다리밑, 관평역과 흑토령 중간 저지대, 성내리 뒷산 공동묘지
- 방식 : 무차별 총살
- 희생자 수 : 800명
10. 황해 수안군 학살
- 발생장소 : 운곡면 차탄 다리밑 , 관평역과 흑토령 중간 저지대, 성내리 뒷산 공동묘지
- 방식 : 무차별 총살
- 희생자 수 : 1,100명/ 김필재 (코나스 객원기자)

 2) 북한, 휴전협정 이후 주요 도발 221회…무력도발 26회
   北 도발로 납치·사망 4119명 '60년간 당하기만 했다
 
1)항공기 테러 등 1953년 정전 후 무력도발 470건, 가장 빈번한 공격은…
  北, 종전 후 470회 도발해 납치·사망 4119명
  북한, 6.25이래 60년 간 정전협정 40만 건 위반 :
 
 북한의 대남 도발 일지
- 북한, 휴전협정 이후 주요 도발 221회…무력도발 26회
- 北 도발로 납치·사망 4119명 '60년간 당하기만 했다
- 항공기 테러 등 1953년 정전 후 무력도발 470건,
- 가장 빈번한 공격은… 北, 종전 후/ 470회 도발해 납치·사망 4119명

 노태우, 김영삼 시절에는 소강 상태를 보이던 북한의 대규모 인명 살상 도발이 김대중의 땡볕 정책 실시 이후 서해에서 해전 형태로 더 큰 규모로 재개되었다. 햇볕 정책은 도발을 줄이기는 커녕 더 큰 도발을 불러 왔을 뿐만 아니라, 핵무장까지 시켜준 국가반역적 정책이었다.

문) 최원기 기자, 6.25 전쟁 이후 남한에 대한 북한의 도발 행위, 그동안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았던     것으로 아는데요, 몇 건이나 됩니까?
답)네, 정전협정이 체결된 것이 1953년 7월인데요. 기록에 따르면 북한은 지난 57년간 요인 암살, 항공기 테러, 육상과 해상 도발, 대량살상무기 발사 등 무려 42만5천 여 차례나 정전협정을 위반했습니다.

문) 정전협정 위반이 40만 건을 넘는다니, 일일이 살펴볼 수도 없을 것 같은데, 90년대 이전에 발생한    주요 도발로는 어떤 것을 꼽을 수 있을까요?
답) 세 가지 사건을 꼽을 수 있는데요. 우선 1968년에 발생한 1.21 사태입니다. 북한의 특수부대인 124군 부대가 한국의 박정희 대통령을 살해하려 한 사건인데요, 당시 북한의 정찰국은 31명의 유격대원을 침투시켜 청와대를 공격하려다 1명이 생포되고 28명이 사살됐습니다.

문) 나머지 두 사건은 어떤 사건입니까?
답) 1983년10월에 일어난 아웅산 폭탄 테러 사건과 87년에 발생한 대한항공 (KAL) 여객기 폭파 사건입니다. 아웅산 폭탄 테러 사건은 버마를 방문한 한국의 전두환 대통령을 암살하려 한 사건입니다. 당시 북한의 특수부대 요원 3명은 버마의 독립투사인 아웅산 묘역을 참배하려던 전두환 대통령을 겨냥해 폭탄을 터뜨렸습니다. 이 과정에서 전두환 대통령은 가까스로 목숨을 건졌지만 이범석 외무장관 등 한국 정부 각료급 인사 대다수를 포함한 17명이 사망했습니다. 또 대항항공기 폭파 사건은 87년 10월에 북한의 공작원인 김현희가 대항항공 858기를 인도양 상공에서 폭파해 승객과 승무원 1백15명이 전원 사망한 사건입니다.

문) 미군을 겨냥한 도발도 있지 않았나요?
답) 네, 1976년에 판문점에서는 북한 군이 미군 장교 2명을 도끼로 살해하는 사건이 있었습니다.

문) 1991년에는 국제적인 냉전이 끝나고 남북한 간에도 불가침과 협력을 다짐하는 기본합의문이 채택      됐는데요. 그 후에는 좀 변화가 있었나요?
답) 1980년대까지만 해도 육상을 통한 무장간첩과 테러 활동이 많았는데요. 90년대 들어서는 해상 도발,     그리고 대량살상무기를 동원한 도발이 주로 발생했습니다. 예를 들어, 지난 96년과 98년에는 북한     의 잠수정이 동해안을 침투하다 발각되기도 했습니다.

문) 서해에서도 교전이 자주 일어났죠?
답)그렇습니다. 북한 인민군은 1999년 9월 일방적으로 서해 해상분계선을 선포했는데요. 그 후에 서해에서는 해상 교전이 자주 일어났습니다. 지난 1999년 6월 1차 연평해전이 발생한 이후 2002년 6월, 그리고 2009년11월 등 세 차례에 걸쳐 해상 충돌이 일어났습니다. 또 올해 3월에는 북한이 잠수정으로 한국의 천안함을 공격해 해군 장병 46명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여기서 한국 이명박 대통령의 목소리를 들어보시죠.“천안함은 북한의 기습적인 어뢰 공격으로 침몰됐습니다. 또 북한이었습니다.”

문) 2000년대에 들어서 북한은 한국은 물론 국제사회를 겨냥해 핵실험과 미사일 같은 대량살상무기 도발을 시도하지 않았나요?
답)그렇습니다. 북한은 지난 98년 8월 대포동 1호 미사일을 발사한 데 이어 2006년 7월에는 대포동 미사일과 노동미사일을 발사했습니다. 또 지난 해 4월에도 장거리 로켓을 발사했습니다.

문) 핵실험도 실시했죠?
답) 네, 핵실험은 남북한이 합의한 ‘한반도 비핵화 공동선언’ 위반인데요. 북한은 지난 2006년 10월 첫 핵실험을 실시한 데 이어 지난 해 5월 2차 핵실험을 실시했습니다. 북한의 발표 내용을 들어보시죠.“주체98, 2009년 5월25일 또 한차례의 지하 핵실험을 성과적으로 진행하였다.”

문) 북한의 대남 도발로 인해 귀중한 인명이 많이 희생됐는데요, 북한이 자신들의 행동에 대해 사과한    적이 있나요?
답) 기록에 따르면 북한은 지난 76년 발생한 판문점 도끼 살해 사건 당시 김일성 주석이 ‘유감’을 표명한 적이 있습니다. 또 96년에 발생한 강릉 잠수함 사건 때도 유감을 표한 적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몇몇 경우를 제외하고는 모두 ‘남한의 날조극’이라며 인정하지 않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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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북한의 주요 대남도발 (자료 : 이래 Page 참조)

북한의 연도별 대남도발 일지 / 68년 1월 ~2010년12월
87년 KAL기 폭파 누락
북한의 대남 도발 일지
唐浦艦 沈沒로 숨진 海軍將兵 39名
당포함 침몰사건 1967년 1월 19일
당포함 전몰장병 추모식

◆ 북한군주요도발일지 
 2010년 11월 23일 (화) 21:23:52 기호일보  webmaster@kihoilbo.co.kr 
 북한이 23일 서해 연평도 인근에 100여 발의 해안포를 발사해 이 중 수십 발이 주민들이 사는 연평도에 떨어졌다.그 동안 우리 수역인 서해상에서 영토 위로 포사격 도발이 이뤄진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1) 다음은 1996년 이후 북한의 주요 도발 일지.
 ▶1996년 4월 4일=북한, 군사분계선(MDL) 및 비무장지대(DMZ) 임무포기 선언
 ▶1996년 4월 5~7일=JSA(공동경비구역) 무장병력 초과 투입(200~300명), 중화기 반입
 ▶1996년 9월 18일=북 잠수함 강릉 앞바다 좌초(26명 탑승)
 ▶1997년 10월 17일=북한 무장군인 12명 대성동 주민 2명 납치
 ▶1998년 2월 2일=JSA 북한군 1명 2회 MDL 월경
 ▶1998년 3월 12일=북한군 12명 MDL 40∼50m 월경(아군 경고사격 20여 발)
 ▶1998년 6월 11일=북한군 GP(경계초소)서 아군 GP 방향 자동소총 4발 발사
 ▶1998년 6월 22일=속초 동방 18.4㎞ 해상서 북한 유고급 잠수정 1척(사체 9구) 발견
 ▶1998년 7월 12일=동해시 해안서 무장간첩 사체 1구, 침투용 수중추진기 1대 발견
 ▶1998년 12월 18일=여수 앞바다 침투 북한 반잠수정 1척 격침
 ▶1999년 6월 15일=북 경비정 서해 북방한계선(NLL) 월선, 1차 연평해전 발생
 ▶2001년 9월 19∼20일=북한군 철원군 DMZ서 MDL 월경(아군 경고사격)
 ▶2001년 11월 27일=북한군 파주군 장파리 DMZ서 아군 초소에 기관총 2∼3발 발사
 ▶2002년 6월 29일=북 경비정 NLL 침범, 2차 연평해전 발생
 ▶2003년 2월 20일=북 미그-29기 1대 연평도 NLL 13㎞ 남하(아군 전투기 대응출격)
 ▶2003년 7월 17일=북한군, 연천 DMZ서 14.5㎜ 기관총 4발 발사(아군 경고사격)
 ▶2003년 10월 30일=북 경비정 NLL 월선(아군 경고사격)
 ▶2004년 7월 14일=북 경비정 NLL 월선(아군 함포사격)
 ▶2004년 10월 10일=북 잠수함 동해 침투 첩보(아군 폭뢰 투하)
 ▶2004년 10월 26일=연천군 GOP 철책선 2곳 절단
 ▶2004년 11월 1일=북 경비정 3척, 서해 소청도 동방 6.5마일 및 연평도 서방 25마일 해상 NLL
           월선(아군 경고사격)
 ▶2009년 9월 4일=북 경비정 1척, 백령도 동북쪽 10㎞ NLL 월선
 ▶2009년 11월 10일=북 경비정 서해 NLL 침범해 남하하다 함포 50여 발 발사. 아군 대응 사격해
          교전(대청해전) 발생
 ▶2010년 3월 26일=백령도 서남방 2.5㎞ 해상에 해군 1천200t급 초계함인 천안함 침몰.
          승조원 104명 가운데 58명 구조, 46명 실종
 ▶2010년 8월 9일=북한군 백령도 북방 해상에 해안포 10여 발 발사
 ▶2010년 11월 23일=북한군 연평도에 해안포 공격
 

2)휴전협정후 북괴의 도발일지| ◈ 오늘의 소식(뉴스)
북괴 도발 일지

1958. 2. 15 KNA 납북사건
부산 수영비행장을 떠나 서울로 향하던 KNA(창랑호)가 평택 상공에서
무장 북한공작원들에 의해 납치돼 평양순안 공항에 강제착륙했다.
우리국회는 북 만행을 규탄하는 메시지를 6.5참전 16개국에 보내는등
강력 항의하자 탑승자 26명 전원을 돌려보냈다.

 1967, 1, 19 당포함 침몰사건.
동해 북쪽 해상에서 해군함대 제1전단 소속 당포함이 북한군의 해안포를
맞고 격침된 사건이다. 당포함은 당시 북방한계선 근방에서 명태잡이를

하던 우리 어선을 보호해 남하시키는 임무를 수행하던 중이었다.

 1968, 1. 21 청와대 습격 기도사건.
북한은 청와대 습격을 목적으로 124군부대 무장공비 김신조 일당 31명을
남파하였으나 대부분 섬멸(사살 2 명)되고, 김신조 1명은 생포 되었다.

1968, 1. 23 미 푸에블로호 납치사건.
미 정보함 푸에블로호를 동해(공해)에서 납치, 12월 23일 승무원
82명과 사체 1구 송환, 선체는 억류

1968, 1. 25 미군부대 초소 피습사건.
미군부대 전방 초소근무자 5명이 무장공비 15명 가량으로부터
기습사격을 받고 교전하였음. 피해(전사 2명, 부상 8명)

1968, 6. 17 DMZ 무장공비 사살사건.
연천 북방 DMZ에서 잠복근무중 침투하는 무장공비를 발견,
교전끝에 1명 사살, 잔당 도주

1968, 6. 19 DMZ 무장공비 사살사건.
철원 북방 D M Z에 무장공비 2개조 7명이 침투한 것을 교전 끝에
모두 사살. 피해(전사 1명, 부상 4명)

1968, 7. 10 전방사단 CP요원 피습사건.
전방사단 CP요원이 잠복 근무지로 가던중 무장공비의 기습사격을 받고
교전하였으나 공비는 도주. 피해(부상 2명)

1968, 7. 23 DMZ 투입병력 피습사건.
아군 병력 8명이 DMZ 투입을 위해 진입 중, 공비로부터 기습사격을
받았음. 피해(전사 4명, 부상 3명)

1968, 7. 29 남해 허사도 무장공비 출현사건.
전남 목포시 허사도에 무장공비 2명이 출현, 민간인 1명 살해하고 도주.

1968, 7. 31 연천 백학 공비사살 사건.
아군 G P요원 4명이 관망대로 가던중 무장공비 8명과 조우,
교전 끝에 1명 사살 피해(전사 2명, 부상 1명)

1968, 8. 3 전방사단 무장공비 사살사건.
연대수색중대 병력이 무장공비와 조우 교전 끝에 2명 사살,
2명 부상 입혔음. 피해(전사 1명, 부상 2명)

1968, 8. 4 DMZ GP병력 피습사건.
아군병력 6명이 GP로부터 종격실로 연한 고지로 진입중, 공비로부터
기습사격을 받고 교전. 피해(부상 1명)


1968, 9. 4 DMZ GP병력 피습사건.
아군 G P병력 7명이 약 70m 떨어져 있는 우물에서 식수운반중,
공비의 기습사격을 받았음. 피해(전사 2명, 부상 2명)

1968, 9. 4 DMZ 작업병력 피습사건.
아군 병력이 크레모아 설치작업을 위해 진입중, 공비의 기습사격을
받았음. 피해(전사 2명, 부상 2명)

1968, 9. 5 G P병력 피습 및 납치사건.
아군 G P병력이 잠복근무를 마치고, 철수중 공비의 기습사격을 받았음.
피해(전사 1명, 2명 납치)

1968, 9. 5 무장공비와 교전사건.
잠복근무중이던 병력이 공비 3명을 발견, 사격을 가하자 공비도
자동화기로 응사 하며, 수류탄 10발을 투척하고 도주. 피해 (전사 1명)

1968, 9. 19 GOP 순찰병력 피습 사건.
GOP 병력이 철책선 순찰중 공비의 수류탄 공격을 받았음. 피해(전사 1명)

1968, 9. 21 GOP 잠복호 피습사건.
GOP 잠복 근무자가 공비의 기습공격을 받았음. 피해(전사 1명, 부상 2명)

1968, 10. 16 DMZ 투입시 피습사건.
아군병력이 DMZ로 투입하던 중, 공비의 기습사격을 받았음. 피해(전사 1명)

1968,10.30 ~11.2 울진.삼척지구.무장공비 침투사건.
북한 124군부대 무장공비 126명을 침투시 켰으나 109명 사살,
7명 생포하였음. 피해(전사 38명, 부상 64명, 민간인 피살 23명)

1968, 10. 31 전방사단 G P병력 피습 사건.
아군 GP 병력이 수색정찰중, 공비의 기습사격을 받았음.
피해(전사 5명, 부상 4명)

1968, 11. 1 서산 무장간첩 사살사건.
충남 서산 성연면 오사리에 무장괴한 2명이 출현하였다는 신고로
작전을 전개 무장간첩 2명 사살. 피해(전사 1명)

1968, 11. 2 전방사단 G P 병력 피습사건.
아군 G P병력이 철책선 순찰중 공비의 기습사격을 받았음. 피해(전사 1명, 부상 1명)

1968, 11. 8 전방사단. 피해(전사 2명, 부상 8명)

 1968, 12. 9 이승복사건.
강원도 평창군 진부면 노동리 이석우씨 집에 무장공비 5명 침입,
"공산당이 싫어요"라고 말한 이승복 형제 3명과 이씨 부인 주씨를 무참히 살해. 공비들에게 가슴을 관통당하는 등 36군데나 칼로 찔린 장남 승복군만 겨우 목숨을 건졌다.

1969, 3. 15 미군부대 병력 피격사건.
미군 병력이 GP 앞의 군사분계선 작업을 위해 진입중 공비의 총격을 받았음.
피해(부상 3명) ※ 이틀후 후송하던 헬기추락으로 7명 사망

1969, 3. 16 주문진 공비 침투사건.
무장공비 8명이 주문진에 침투, 보안부대원을 사칭, 여인숙 투숙객 검문하고,
수상 파출소에서 경찰관을 납치하려다 사살. 피해(전사 1명, 부상 1명)

1969, 5. 14 전방사단 공비 사살 사건.
연대수색중대 병력이 경계근무중 침투공비 1명 발견하고 사살

1969, 5. 15 미군부대 병력 피습사건.
미군 병력이 철책선 점검중 공비의 사격을 받고, 응사하자 도주하였음.피해(부상 2명)

1969, 5. 20 미군부대공비 사살사건.
미군 잠복근무자(카츄사)가 침투하는 공비 3명을 발견, 일제히 사격을
가하자 응사하며 도주. 수색결과 공비 시체 1구와 기관단총 등 다수의 유기물 노획.

1969, 5. 20 전방사단 공비 사살사건.
연대 수색중대 잠복조가 침투하는 공비를 발견 집중사격으로 2명을
사살하고 기관 단총 등 다수의 장비 노획. 피해(부상 2명)

1969, 5. 23 전방사단 공비 사살사건.
야간 경계근무자가 3초소 전방에서 공비를 발견하고, 사격으로 1명 사살. 피해(전사 1명)

1969, 5. 25 전방사단 공비 사살사건.
아군 병력이 순찰중 공비로부터 사격을 받고, 즉시 응사하여 공비 3명 사살. 피해(부상 1명)

1969, 6. 14 부안 침투간첩 사살사건.
전북 부안 하서면 주민이 해안가에서 고무보트와 배낭 2개를 발견하고
경찰에 신고, 수색작전 끝에 간첩 3명 사살. 피해(경찰관 4명 부상)

1969, 7. 24 GOP 부대 공비 사살사건.
철책 경계병이 약 15m 전방에서 침투하는 공비를 발견, 교전끝에 3명 사살


1969, 10. 12 전방사단 공비 사살사건.
잠복호 근무자가 철책선 남방 5 m지점 능선으로 침투하는 간첩을 발견
교전 끝에 1명을 사살하였고, 9월 8일 경기도 가평에서
조장 김은환을 검거. 피해(전사 3명, 부상 5명)

1969, 10. 14 DMZ 침투공비 사살사건.
연대 수색중대 잠복호에서 8명이 근무중 전방 10m 지점에서 침투하는
공비를 발견 1명을 사살. 피해(경상 1명)

 1969. 12. 11 KAL기 납북사건.
KAL(YS-11)기는 승객 47명과 승무원 4명 등 51명을 태우고
강릉을 출발해 서울로 가던 중 대관령 상공에서 납치돼 원산으로 기수를 돌렸다.
북한 방송은 창랑호 피랍 때처럼 "자진 입북했다"고 보도했다.
납치 66일 만인 1970년 2월 14일 탑승자 중 승객 39명만
판문점을 통해 돌려 보냈으나 승무원·승객 12명(납치범 포함)의 송환은 지금까지 거부하고 있다.

1970, 3. 8 영덕해안 간첩 사살사건.
해안초소 근무병이 해안순찰중, 동력보트와 적탄통을 발견, 수색작전 끝에 해병대 병력이 간첩 2명 사살.
1970, 3. 13 DMZ 공비 사살사건.
연대 수색중대 병력이 GP 동쪽 300m 지점에서 공비 3명을 발견, 교전 끝에 2명 사살. 피해(부상 2명)
1970, 4. 8 금촌 침투간첩 사살사건.
경기 파주 금촌 거주 농민이 은신중인 간첩 3명을 발견하고 신고, 군·경 합동작전 으로 전원 사살.
1970, 4. 29 전방사단 공비 사살사건.
사단 수색중대 매복조가 100m 전방에서 공비의 기습사격을 받고, 교전끝에 2명사살. 피해(부상 2명)
1970, 4. 29 전방사단 공비 사살사건.
연대수색중대 매복조가 공비 3명을 발견,교전 끝에 전원 사살
1970, 5. 3 안면도 침투간첩 사살사건.
검거간첩을 역이용, 안면도에서 접선공작을 실시 침투한 간첩 3명을 사살.
1970, 6. 13 전방사단 공비사살사건.
연대 잠복초소 근무병이 우측방 개울을 따라 침투하는 공비 2명을 사살
1970, 6. 15 미군부대 공비 사살사건.
장단반도 거곡리 제1초소에서 공비의 기습사격을 받고, 교전 끝에 1명 사살
1970, 6. 18 전방사단 공비 출현사건.
연천군 초성리에서 아군 병력이 잠복근무중 공비 1명이 출현, 권총으로 사격을 가하여 부상을 입히고 도주.
1970, 6. 22 국립묘지 현충문 폭파사건.
북한 간첩이 국립묘지 참배요인을 살해하기 위해 현충문에 폭발물을
장치 하다가 실수로 간첩 1명은 폭사 하였고, 잔당은 도주.
1970, 6. 28 영흥도 간첩선 격침사건.
아군초소 경비정이 영흥도 북방에서 간첩선을 발견, 합동작전으로
격침시키고 내륙으로 상륙한 공비 6명 사살.
1970 6. 30 전방사단 공비 사살사건.
까치봉 서남방 철책선 부근에서 공비를 발견, 교전끝에 1명 사살 피해(전사 2명)
1970, 7. 5 김포 계양산 간첩 사살사건.
경기 김포 고촌면 뒷산에서 학생이 거동 수상자를 발견 신고하여, 출동한 군 병력이 3명 사살.
1970, 7. 22 영덕 해안 간첩선 격침사건.
경북 영덕 해안초소 앞 50m 해상에서 간첩선을 발견, 사격하자
응사하며 도주, 합동작전으로 격침. 17명 사살 추정.
1970, 9. 19 영종도 침투 간첩 사살사건.
영종도 중산리 거주 학생이 괴한 2명을 발견하고, 군·경 합동작전으로 간첩 2명 사살. 피해(전사 1명, 부상 2명)
1970, 9. 22 GOP부대 공비 사살사건.
아군 잠복초소 전방 철책선에서 공비가 선제공격하여 교전끝에 3명 사살.
피해(전사 1명, 부상 1명)


1970, 9. 26 부산 가덕도 침투간첩.
사살사건 부산 가덕중학교 학생이 산에서 괴한 2명을 발견,
출동한 경찰·예비군이 2명 사살. 피해(전사 2명)
1970, 10. 6 임진강 수중침투 공비 사살사건.
연대수색중대가 임진강변을 수색중 공비 3명을 발견, 교전끝에 모두 사살. 피해(전사 2명, 부상 6명)
1970, 10. 10 거진 간첩선 격침사건.
강원도 거진 북방에서 해군함정이 간첩선을 발견, 해·공군 합동작전으로
휴전선 남방 5마일 해상에서 격침, 4명 사살 추정.
1970, 10. 11 해남 침투간첩 사살사건.
전남 해남 화산면 거주 박양진 집에 거동수상자 1명 출현, 박씨의 처가 신고, 경찰이 사살.
1970, 10. 14 전방사단 공비 사살사건.
연대수색중대가 박달봉 정상 10m 부근에서 공비 2명을 발견, 사살.
1970 10. 18 전방사단 공비 사살사건.
GOP에서 소대장 외 1명이 철책선 점검 중 공비 3명을 발견, 교전 끝에 2명 사살.
1970, 10. 22 GOP 사단지역 간첩 복귀사건.
철책선 순찰병이 이상한 소음을 청취후 수하시 총격을 받고 교전,수색결과 철책이 절단되어 있어 간첩의 복귀로 판단하였음. 피해(전사 1명, 부상 1명)
1970, 10. 22 전방 사단지역 공비 침투사건.
백석산 동북방 GP 외곽 철책부근에서 소음을 청취하고, 접근하다 기습사격을 받고, 교전후 확인한 결과 철책 2개소 절단 및 도주흔적 발견. 피해(전사 1명, 부상 1명)
1970, 10. 24 전방사단 공비 사살사건.
연대수색중대 매복조가 향로봉 서북방 8㎞ 지점에서 공비 3명을 발견 교전끝에 1명 사살. 피해(전사 2명)
1970, 11. 7 인천지역 간첩 생포 및 사살사건.
인천 율도 발전소 예비군 초병이 해안에서 침투하는 괴한을 발견하고 수하하자, 초병을 살해하고 도주. 출동한 군 병력이 1명 사살, 1명 생포. 피해(전사 2명, 부상 2명)
1971, 6. 16 전방사단 침투 공비 사살사건.
연대 수색중대 병력이 철원군 백마고지 서남방에서 매복근무 중,
20m 전방에서 접근하는 공비 3명을 발견 교전 끝에 1명 사살, 잔당은 도주.
1971, 6. 18 석모도 침투 공비 사살 및 생포사건.
경찰이 강화 석모도에서 북한장비를 발견, 수색중 공비 3명을 발견,
교전 끝에 2명 사살하고, 1명 생포. 피해(부상 1명)
1971 6. 30 임진강 침투 공비 사살사건.
사단수색중대 병력이 임진강변에서 잠복 근무중 공비 3명으로부터 기습사격을 받고, 교전 끝에 2명 사살,1명 자폭. 피해(전사 4명, 부상 12명, 장갑차 1대 전소)
1971, 7. 1 GOP부대 산병호 침투공비사살사건.
아군 병력이 산병호 경계근무중 수중철책선 하단부를 굴토하고 침투하는 공비 3명을 발견, 2명 사살 잔당 도주.
1971, 8. 16 DMZ 공비사살사건.
아군 병력이 DMZ 수색중 공비 5명을 발견, 교전 끝에 전원 사살. 피해(전사 1명, 부상 2명)
1971, 8. 19 군단 하교대 공비 출현사건.
군단 하교대 부사관 후보생이 보초근무중 괴한 2명을 발견하고 사격을 가하자, 공비는 도주하고 기관단총, 피묻은 붕대,배낭 등을 노획.
1971, 8. 20 강화도 침투안내원 사살사건.
강화군 길상면 거주 민간인이 괴한 2명을 발견하고 신고. 수색작전끝에

안내원 2명사살. 피해(전사 2명)
1971, 8. 21 전방사단 공비 사살사건.
아군 병력이 매복근무중 괴한 3명을 발견, 교전끝에 공비 3명 사살. 피해(부상 1명)
1971, 8. 27 임진강 수중침투 간첩 사살사건.
사단 경계병이 임진강 해안에서 괴물체 4개를 발견, 수색작전을 전개한 군 기동타격대가 간첩 4명 사살. 피해(전사 1명,부상 1명)
1971, 9. 13 월성 해안 침투간첩 사살사건.
해병대 병력이 경북 월성 해안에서 공비3명을 발견, 교전 끝에 2명 사살.피해(경상 2명)
1971, 9. 18 해병여단 공비 사살사건.
김포군 양촌면에서 민간인이 괴한 4명을 발견 신고, 출동한 해병과 교전 끝에 3명 사살. 피해(전사 9명, 부상 20명)
1971, 10. 25 DMZ 침투공비사살사건.
DMZ 매복 근무자가 철책선 북방 50m 지점에서 공비를 발견,
교전끝에 2명 사살.
1971, 10. 30 전남 소허사도 간첩 사살 및간첩선 노획사건.
전남 소허사도에 괴선박 1척이 출현 하였다는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은
산으로 도주하는 간첩 4명을 발견, 교전 끝에 전원 사살하고 유기한 간첩선 나포. 피해(전사 1명)
1973, 4. 17 전방사단 공비 사살사건.
연대수색중대 병력이 매복근무중 공비 3명이 침투하는 것을 발견, 교전 끝에 2명은 사살, 잔당은 도주.
1973, 5. 5 완도 침투간첩 사살사건.
완도 거주 주민 4명이 괴한 2명을 발견하고 검거하려다 권총에 맞고 부상,
신고를 받은 경찰이 출동 1명 사살, 1명 행방불명.
1973.3.7  3사단(백골) 사단 ,백골 부대원을 향해 기습사격! (DMZ 표지판 보수작업 중에)
 백골부대 장병 2명이 중상을 입었다.105미리, 155미리 포로 적진지에 포격을 가하였고, 북은 전군비상령에, 전군 동원령이 내리고.. 보복포격으로 30여 명이 사망
1974, 4. 2 리비교 공비침투 및 복귀사건.
대대 후문 보초병이 도로에서 괴한 3명을 발견하고 수하 하자. "11중대 병력이다”라고 하여
암구호도 확인하지 않고 통과시켜 북상 도주.
1974, 5. 20 추자도 간첩 사살사건.
간첩 2명이 북제주군 추자면 대서리 본가에 출현한 것을 조카가 신고,
출동한 군·경이 1명 사살, 잔당은 도주. 피해(전사 3명)
1974, 7. 20 어청도 근해간첩선 격침사건.
해군 함정이 격렬비열도 25마일 해상에서 의아선박을 발견, 추격하자 사격하며 도주함으로 집중사격으로 격침. 간첩사살 7~8명 추정. 피해(경상 3명)
1974.8. 15 육영수 영부인 피살사건.
8.15 경축행사때 재일 한국인 문세광의 저격에 박대통령은 무사했으나 육영수 여사는 목숨을 잃었다.
1975, 4. 27 동래 침투간첩 검거사건.
부산시 동래구 석대동 거주 민간인이 산에서 거동 수상자 2명을 발견 신고, 출동한 군·경은 간첩 1명 체포, 5월 3일 간첩 추가 검거.
1975, 6. 28 광주 침투공비 사살사건.
광주시 서구 동운동 뒷산에서 괴한 2명 발견하여 신고, 군·경은 추격 끝에 1명 사살, 1명 도주, 8월 1일 전북 완주에서 사살.
1975, 9. 11 고창 침투공비 사살사건.
전경대 해안초소 경계병이 순찰중 괴한 2명으로부터 사격을 받고 교전, 1명 사살, 1명 도주 피해(전사 3명, 부상 2명)

1976, 6. 19 GOP부대 공비 사살사건.
GOP 근무자가 북한강변 철책선 부근에 서 공비를 발견, 교전 끝에 3명 사살. 피해(전사 4명, 부상 6명)
1976, 7. 3 완도 공비 침투사건.
전남 완도군 금일읍 화목리 거주 주민 3명이 약초 채취차
구도(무인도)로 건너간 후, 1명은 공비의 권총에 맞아 살해되고, 2명은 후일 생환.
1976, 8. 18 도끼만행 사건.
휴전선에서 인민군이 도끼로 미군장병 2명을 살해하는 만행을 저질렀다. 이 때는 한미군 합동으로 전쟁불사 위협으로 김일성의 사과를 받아냈다.
1977, 5. 3 GOP부대 공비 복귀사건.
초병이 철책선 점검중 공비의 기습사격 으로 전사, 수색결과 철책절단 및 복귀흔적 발견
1978, 10. 5 GOP부대 공비 강습복귀사건.
병사 4명이 전역 및 휴가신고 차 연대본부로 가던중 공비의 기습사격으로
3명이 사망하고, 생존자 신고로 작전을 전개 하였으나 철책을 뚫고 북상 도주.
1978, 11. 4 광천 침투공비 민간인 살해 도주사건.
충남 광천 말봉산에서 나무하러 갔던 여인 2명이 공비에게 살해되고, 도주하면서 주민 3명을 추가 살해하고 도주.
1979, 10. 5 GOP부대 공비 사살사건.
GOP 병력이 철책선 순찰중 철책절단 및 침투흔적 발견, 수색작전을 전개하여 대암산 서남방 2㎞지점에서 공비 1명 사살.
1980, 3. 23 한강 수중침투 공비사살 사건.
초병이 경기 고양 법곳리 한강변으로 침투하는 공비 3명을 발견, 전원 사살.
1980, 3. 27 DMZ 침투공비 사살사건.
아군 병력이 DMZ 수색중 공비 3명을 발견, 교전 끝에 1명 사살. 피해(전사 1명, 부상 1명)
1980, 6. 20 보령해안 간첩선 격침사건.
해안 초병이 괴선박을 발견 사격하자 응사하며 도주, 해·공군 합동작전으로
격침후 간첩 김광현 생포 피해(부상 2명)
1980, 11. 3 전남 횡간도 침투간첩 사살사건.
전남 완도군 횡간도 거주 어민이 괴한 3명을 발견하고 신고,
군·경 합동작전으로 전원 사살. 피해(사망 1명, 부상 6명)
1980, 12. 1 경남 남해침투 간첩선격침사건.
레이더가 남해 목도 남방 7㎞ 해상에서 괴선박 포착,
육·해·공군 합동 작전으로 간첩선 격침, 9명 사살 피해(전사 3명, 부상 3명)
1981, 6. 10~6. 21 임진강 수중 침투 공비 복귀사건.
철책선 경계병력이 임진강에서 배낭을 습득 조사한 바, 무장공비 3명이 6월 10일 임진강으로 침투, 구파발 지역에서 군사시설 촬영후, 6월 21일 복귀하다 분실한 배낭으로 확인.
1981, 6. 29 필승교 수중 침투 공비 사살사건.
필승교 경계병이 다리 밑으로 떠내려가 는 물체를 발견하고, 사격하였으나 수중 동물로 오판,
그후 공비 유기물이 발견되어 작전 끝에 논두렁에 은신중인 공비 1명을 사살. 피해(부상 1명)
1982, 5. 15 해안 침투공비 사살사건.
해안초소병이 강원도 고성군 현내면 지경리 해안으로 접근하는 괴한 2명을 발견, 1명 사살, 잔당은 도주.
1983, 6. 19 일월교 침투공비 사살사건.
초병이 파주군 문산읍 임월교 다리 밑으로 침투하는 공비 3명을 발견, 집중 사격으로 전원 사살.
1983, 8. 5 월성해안 침투 간첩 사살사건.
해병대 병력이 경북 월성군 양남 수렵리에서 침투하는 괴한을 발견,

해. 공군  합동작전으로 5명 사살. 피해(해경정 1척 침몰)
1983, 8. 13 독도근해 간첩선 격침사건.
독도 근해를 초계중이던 강원함이 남하 하는 의아선박을 발견, 정선을 명했으나 도주,
함상헬기가 출동 격침, 19명 사살 추정.
1983. 10. 9  아웅산 테러사건.
당시 전두환 대통령의 서남아·대양주 6개국 공식 순방 첫 방문국인 버마(현 미얀마)의 아웅산 묘소에서 일어난 강력한 폭발 사건으로 대통령의 공식·비공식 수행원 17명이 사망하고 14명이 중경상을 입었다.
1983, 12. 3 부산 다대포 침투간첩 생포사건.
해안 초병이 부산 다대포 해안 매복근무 중 침투하는 간첩 2명을 발견,
격투 끝에 생포하고, 해·공군 합동작전으로 간첩선 격침. 3명 사살.
1984, 9. 24 대구 무장간첩 출현사건.
대구시 동구 신암2동에 무장간첩이 출현, 미용실 여주인과 식당 종업원 등
2명을 살해하고 1명에게 부상을 입힌 후 자살.
1984, 10. 19 부산 수영만 간첩선 격침사건.
해안레이더가 수영만 동쪽 1마일 해상에서 의아 선박을 포착, 해군 PK편대가 출동 교전 끝에 격침. 5명 사살 추정
1987.11. 29 KAL858기 폭파사건.
주범 김현희로 하여금 중동 건설근로자들이 많이 탑승한 KAL기에 시한폭탄을 장치해 폭팔케한 사건. 
1992, 5. 22 DMZ 침투공비 사살사건.
무장공비 3명이 아 GP 남방 800m 지점에 침투하는 것을 사전에 발견하고, 전원 사살.
1995, 10. 17 임진강변 무장 공비 사살사건.
GOP 경계병이 전방 20m 절벽 아래에서 공비 1명이 올라오는 것을 발견하고 사살.
1995, 10. 24 부여 무장간첩 사살 및 생포사건.
충남 부여군 석성면 정각사 입구에 무장 간첩 2명이 출현, 교전 끝에 1명을
사살하고, 1명 생포. 피해(전사 2명, 부상 1명)
1996, 9. 17 강릉 해안 잠수함 침투사건.
강릉시 강동면 고속도로 상에서 택시 기사가 암초에 좌초된 잠수함을
발견하고 신고 군·경 합동작전으로 공비 25명 소탕, 잠수함 노획. 피해(전사 11명, 부상 41명)
1998, 6. 22 속초해안 잠수정 침투사건.
속초 동남방 11 . 5마일 해상에서 어민이 어망에 걸린 잠수정을 발견하고 신고,군·경 합동작전으로 잠수정 예인, 자폭시체 9구 인양, 조사결과 무장간첩으로 확인.
1998, 12. 18 남해안 침투 간첩선 격침사건.
해안 레이더에서 간첩선 포착, 해·공군 합동작전을 전개, 욕지도 남방 5 6마일 해상에서 격침. 반잠수정 1척, 공작원 1명 포함 사체 6구 인양, 간첩장비 1,209점 노획.
1999, 6.15 연평해전.
북한 함정 수십척이 NLL을 넘어 우리 해군고속정에 포격을 가해오자 우리 해군 2함대 박정성 사령관이 발포 명령하거 응사하여 북한함정 2척 침몰  2척 대파 북한해군 수십명 사살하고 퇴각시켜으나.
훈장을 받아야할 박제독은 북한의 요청이라는. 김대중에 의해 보직해임 발령을 받는 어이없는 일이 벌어졌다.
2002, 6. 29 서해교전.
연평해전의 복수극으로 여겨지는 북한함정의 기습포격 공격에 우리해군 전사자 6명 부상자 수십명 발생. 공격을 못하게하고 선미추돌(船尾追突) 대응만 하라는 당시 대통령 김대중 지시 때문에 속수무책으로 당한 전쟁이었다.

 

2007, 7. 12 금강산 관광객 피살사건.
금강산 관광객 박왕자 주부를 금지구역에 들어왔다고 총격을 가해 사살한 사건
2009. 11. 10: 대청도 사건.
북한 해군 선제공격에 집중포화로 적함을 반파시켜 퇴각시킨 사건.
 2010. 3  26: 천안함 초계함 격침사건.
지난해 대청도 사건의 보복사건으로 추정되는 사건으로서 북한 어뢰나 기뢰공격에 천안함이 두 동강난 사건.
2010.11.23 연평도 포격사건
오후 2시 30분 부터 약 1시간 가량 우리 군의 해상사격훈련이 끝난 뒤 북한이 해안포를 수십발을 연평도와 인근 해상으로 발사
피해사항(병사2명전사,민간인2명 사망 
                                                       2011년 1월11일. Js- Kim

ROTC Guguk Yonhap            
천하수안, 망전필위(天下雖安, 忘戰必危 )
대한민국 ROTC 救國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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