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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당에 드리운 북한 地下黨의 흔적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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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현우 작성일12-04-10 01:56 조회9,533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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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당에 드리운 북한 地下黨의 흔적들!
남로당-인혁당-통혁당-남민전-중부지역당으로 이어지는

從北세력의 뿌리는 6·25사변으로 거슬러간다. 남한에서 살아남은 빨치산·남로당 출신의 한풀이와 북한의 집요한 對南공작이 맞물려 從北세력 주류를 이루게 된 셈이다. 여기에 386주사파 세력이 등장하면서 從北세력은 양적으로 팽창한다.

6·25사변 이후 남한 조선로동당(남로당)은 사라졌지만 남로당은 인혁당-통혁당-남민전-중부지역당 등 이른바 ‘지하당’으로 이념적 흐름이 이어진다. 그리고 2012년 현재, 이들 남로당·인혁당·통혁당·남민전·중부지역당 출신들은 386주사파 그룹과 함께 거대한 從北主義 그룹을 이뤄 권력 탈취를 꾀하고 있다.

<“인혁당, 4.19 후 첫 자생적 공산주의 혁명운동조직”>

6·25때 남한에서 패퇴된 남로당 세력의 첫 번째 공식적 재건은 64년 검거된 인민혁명당(인혁당)이다.

64년 인혁당 사건과 73년 인혁당 재건위원회(재건위) 사건은 다른 것이다. 73년 인혁당 재건위 사건은 2007년 법원에 의해 무죄로 再審(재심)판결이 났었다. 물론 2007년 再審판결은 73년 당시 법원이 인혁당 재건위를 반국가단체로 규정해 도예종 등 관련자 8명을 死刑한, ‘무리한 법집행’ 부분을 무효로 판단했다. 이 再審판결이 인혁당 재건위는 실체가 없으며 조작된 것이란 판단은 아니며 무엇보다 64년 인혁당 사건과 무관하다.

64년 인혁당은 부인할 수 없는 地下공산혁명조직이다. 인혁당은 남파간첩 김영춘에 포섭된 도예종·이재문 등이 조선노동당 강령을 토대로 작성한 정강에 기초해 62년 1월 결성한 단체다. 인혁당은 북한의 지령에 따라 간첩활동을 하다 64년 중앙정보부에 의해 검거됐다.

도예종·이재문은 이 사건으로 각각 징역4년과 징역1년을 선고받았다. 도예종은 73년 인혁당 재건을 꾀하다 결국 사형 당했고 이재문은 79년 남민전 사건으로 사형이 확정된 후 81년 10월 서대문 구치소에서 병사한다.

안병직 서울대 명예교수(75)는 최근 펴낸 저서 ‘보수가 이끌다. 한국 민주주의 발전과 미래’를 통해 건국 후 60년 동안 산업화와 민주화를 이룩한 보수 우파세력의 발자취를 뒤돌아보면서 민주화운동을 從北主義와 분리해야 한다는 점을 일깨워 주었다.

安교수는 60년대 이른바 ‘식민지 半봉건사회론(대한민국을 자본주의화가 덜된, 강대국의 식민지로 보는 좌파이론)을 주창했던 인물로서 80년대 말 전향했다. 그는 위의 책에서 자신의 60~70년대 서울 상대 좌익운동을 증언하면서 64년 인혁당 사건을 “4·19 후 첫 자생적 공산주의 혁명운동조직이었다”고 밝혔다

安교수는 62년 당시 서울대 대학원 재학 당시 인혁당 핵심 연루자 박현채 교수의 지도 아래 사회주의자가 됐다고 털어놨다. 安교수의 선배인 朴교수는 60~70년대 대표적 좌파 경제학자로 통했다. 널리 알려진 바와 같이, 朴교수는 ‘소년 빨치산’ 이었다. 그는 6·25 때 北인민군이 패퇴하자 16세 나이로 입산해 2년간 빨치산 활동을 벌였다. 우여곡절 끝에 서울대 경제학과에 입학한 그는 안병직 등 상대 후배들의 좌익 세뇌공작에 앞장섰다고 한다.

<“통혁당, 남로당 부활시킨 조직체”>

통일혁명당(통혁당) 사건 역시 中央黨(중앙당)인 조선로동당 지시를 받는 地下黨(지하당)이었다. 통혁당은 1961년 12월 전남 무안 荏子島(임자도) 주민 최영도가 南派공작원 김수영에 포섭되며 시작됐다. 최영도는 평양을 오가며 조선노동당에 입당했고 이후 김종태를 포섭했다.

김종태도 평양을 오가며 조선로동당에 입당했고 이후 김질락·이문규 등과 통혁당을 조직한다. 이 사건은 한명숙 민주통합당 대표와 韓대표 남편인 박성준, 신영복도 연루됐다. 통혁당 조직원들은 美貨7만 달러, 韓貨 3천만 원, 日貨 50만 엔의 공작금을 받으며 간첩활동을 하다 68년 8월 중앙정보부에 검거됐다.

A4 1000여 쪽에 달하는 판결문은 통혁당을 “남로당을 부활시킨 조직체”로서 “북한의 무력남침에 대비한 사전 공작 조직”이라며 이렇게 정의했다.

《통일혁명당이 북괴의 무력남침에 대비한 사전 공작으로 조직된 단체로서 유격전을 기도하여 무력행사를 준비하였으며, 과거의 남로당 조직을 부활시킨 조직체일 뿐만 아니라 지식층의 청년을 포섭하였으며(···)간부진의 빈번한 입북과 국가기밀 누설, 거액의 공작금 지원 등이 있은 사실을 감안하여…》

통혁당 사건의 주범인 김종태, 김질락은 사형됐다. 신영복, 박성준은 각각 무기징역, 징역 15년을 선고받고 20년과 12년을 복역했다. 韓대표 역시 징역 1년, 집행유예1년, 자격정지1년의 실형을 선고받았다.

<“인혁당 잔당이 재건한 남민전”>

통혁당의 이념적 흐름은 남조선민족해방전선(남민전)으로 이어진다. 79년 10월 검거된 남민전은 64년 인혁당 연루자 이재문 등이 감옥에 나와서 결성한 또 다른 地下 공산혁명조직이다. 남민전은 인혁당 재건위 사형수 8명의 옷을 모아 北韓旗(북한기)를 모방한 남민전 깃발을 제작했다.

남민전은 민중봉기로 공산혁명을 한다는 목표 아래 김일성에게 “피로써 충성을 맹세”하는 서신을 보냈고, 결정적 시기에 북한군 지원을 요청할 계획을 세웠다. 彗星隊(혜성대)라는 행동대를 조직했고 기업인 자택·금은방에 수차 례 침입해 금품을 강탈한 소위 ‘땅벌작전’도 벌였다.

남민전 주범인 이재문·신향식은 사형선고를 받았고 이밖에도 안재구(前숙명여대 교수), 김승균(前사상계 편집장), 임헌영(現민족문제연구소장), 이학영 등 70여 명이 구속됐다. 이학영은 남민전 사건에 연루돼 5년간 복역한 뒤 2011년 10·26서울시장 보궐선거 당시 박원순 선대위에서 활동했고 민주통합당 소속으로 4·11총선(경기 군포)에 출마했다.

남민전은 한국을 미국의 소위 “新식민지 사회”로 보았고 소위 미국의 “토착 지배체제”인 박정희 정권을 타도대상으로 삼았다. 이 같은 인식은 80년대 NL주사파로 구체화된다.

<“조선로동당 하부조직으로 건설된 중부지역당”>

남로당을 잇는 地下 공산혁명조직의 흐름은 80년대 NL주사파가 가세하면서 92년 ‘남한 조선노동당 중부지역당’ 사건으로 재건된다. 중부지역당 사건은 북한이 조선로동당 서열 22위 간첩 이선실을 남파, 95년 공산화 통일을 이루는 전략 하에 남한에 조선로동당 하부조직인 중부지역당을 건설한 사건이다.

이 사건으로 중부지역당 총책 황인오와 김낙중(前민중당 대표), 이철우(前열린우리당 의원), 윤민석(작곡가) 등 62명이 구속됐다. 이철우는 93년 7월 징역4년을 선고받아 복역했고, 99년 2월 특별 복권돼 17대 국회에 입성했으나, 선거법 위반으로 2005년 의원직을 상실했다. 그는 민주통합당 소속으로 4·11총선(경기 포천·연천)에 다시 출마한다.

이철우는 2004년 12월, 92년 중부지역당 행적이 언론에 보도돼 물의를 빚었던 인물이다. 그의 중부지역당 1심 판결문에 따르면, “피고인(이철우 前의원)은 북한 朝鮮勞動黨旗(조선로동당기)를 스카치테이프로 벽에 걸고 그 밑에 김일성·김정일 초상화를 각각 전시한 다음 당기와 초상화를 바라보고 입당식을 거행했다”고 나온다.

또 “피고인은 위대한 수령님을 모시고 우리 朝鮮勞動黨이 치켜든 찬란한 주체의 햇불을 따라(···)영광스런 우리 朝鮮勞動黨과 수령님 앞에서 나의 전 생애와 생명을 걸고 다음과 같이 맹세한다”며 “나는 수령님께 무한히 충직한 수령님의 전사이다”라며 이렇게 맹세했다고 판시돼 있다.

《위대한 김일성 수령님과 친애하는 지도자 김정일 동지를 통일의 광장에 높이 모실 그날을 가슴 벅차게 그려보며, 주체의 혁명위업을 이 땅에서 실현할 우리 한국의 혁명가들은 어떠한 고난이 닥쳐온다 해도 수령, 조국과 민중 앞에 다진 우리의 맹세를 지켜갈 것이다》

<지하당 사건 연루자들, 이제는 수면 위로>

남로당-인혁당-통혁당-남민전-중부지역당으로 이어지는 ‘지하당’ 흐름은 오랜 기간 在野의 투쟁기를 지나 2012년 공개적 궐기를 앞두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민주당을 들여다보자. 당 대표는 통혁당 연루자 한명숙씨이고 黨歌(당가)를 작곡, 작사한 인물 모두 남한조선로동당 중부지역당 사건 연루자인 이철우 前의원과 윤민석이다. 민주당이 경기 군포에 전략공천한 인물은 남민전 연루자 이학영이다.

인간은 대부분 과거의 사상적 궤적 위에서 살아간다. 한명숙 대표는 親北·反美노선을 일관되게 고수해왔다. 그녀는 북한의 천안함 폭침 이후 이명박 정부가 ▲“전쟁불사라는 전쟁 먹구름을 몰고 오고 있다(2010년 5월26일 ‘한반도 평화를 위한 시국회의’)” ▲“46명의 꽃다운 청춘을 차가운 바다에 수장시키고(2010년 5월29일 광화문 선거유세)”는 등 극단적 발언을 했었다.

한명숙 민주당 대표는 북한이 핵보유 선언(2005년 2월10일)을 하자 ▲“북한 나름대로의 국익이 있기 때문(2005년 6월27일 국회)”이라고 감싸더니 이듬해 북한이 핵실험(2006년 10월9일)을 하자 ▲“핵을 가지고 어느 나라를 전시적인 도발을 하려는 게 아니다(···)미국의 제재와 일관된 금융압박이 하나의 원인일 수 있다(2006년 10월11일 국회)”며 북한을 옹호했다.

이철우 前의원의 스탠스 역시 마찬가지다. 17대 국회 입성 후 미국의 북한인권법에 대한 반대 활동과 국가보안법 폐지에 주력했다. 2004년 9월2일에는 열린당 의원 25명과 함께 미국 상원 국제관계위원회 리처드 루거 위원장에게 ‘북한인권법’에 대한 우려를 표시하는 서한을 주한미대사관에 전달하기도 했다.

이철우 前의원은 2004년 5월25일 전대협 출신 열린당 당선자들 및 민족해방(NL)계열 주사파단체인 범민련남측본부 등 운동권 선배들과 회합한 자리에서 “천하의 빨갱이가 휴전선 옆에서 당선됐다. 초심을 잃지 않고 끝까지 지켜나가겠다”며 운동권 선배들의 격려에 화답하기도 했다.(발언 출처:인터넷 통일뉴스)

<“黨창건 60년 맞아 北으로 가자”>

빨치산·남로당 출신의 주장은 더욱 극렬하다. 이들의 ‘現在(현재)’는 ‘過去(과거)’의 못 이룬 혁명의 만조기인 셈이다.

2005년 5월27일. 경기도 파주 보광사에서 소위 ‘통일애국열사묘역’이 조성돼 기념식이 열렸다. 이 묘역은 6·25당시 빨치산·남로당 출신과 간첩을 추모하기 위해 만든 것이다. 당시 범민련 남측본부라는 단체의 명예의장 이종린은 이렇게 말했다.

“경기도 보광사 이 땅은 美제국주의가 점령하고 있는 점령지인데, 우리가 동지들을 이곳에 모셔 송구스럽게 생각한다. 반드시 진정한 우리 祖國 땅에 모실 수 있도록 하겠다(인터넷매체 오마이뉴스 보도)”

스스로 말하듯 북한이 “진정한 우리 조국 땅”, 한국은 “美제국주의가 점령하고 있는 점령지”라는 것이다. 같은 날 전북 순창군 회문산 인근에서 소위 ‘남녘 통일애국열사 추모제’가 열렸다. ‘남녘 통일애국열사’ 역시 빨치산·남로당과 간첩 출신으로 사망한 자를 말한다.

행사에 참석한 이들은 6.25 당시 빨치산의 투쟁정신을 이어받아 美帝 축출을 다짐했다. 경남지역 빨치산 출신 박순자는 “죽은 동지들은 外勢(외세)를 반대해 투쟁했다”며 “해방 60돌, 黨(당) 창건 60돌, 6.15 5돌인 올해 우리는 손에 손을 잡고 북으로 간다. 통일은 다 됐다”고 말했다. 여기서 말하는 黨은 물론 북한의 조선로동당이다.

2012년 대선은 예년의 선거와 질적인 차이를 보인다. 장성한 80년대 NL주사파 그룹과 남로당-인혁당-통혁당-남민전-중부지역당 등 ‘지하당’ 사건 연루자들의 정권 장악은 단순한 좌경화 차원을 넘어 대한민국의 시스템의 근본적 변화를 초래할 것으로 보인다. 선동에 넘어간 상당수 국민이 느끼는 안이한 생각이 돌이킬 수 없는 재앙을 부를지 모른다.

김성욱 좌익연구 전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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